시간이 흘러도, 시간이 흘러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음악 방송을 보며 쟤는 누구고, 언제 나왔고, 무슨 노래가 가장 히트곡이며, 저들은 몇 명인지 줄줄이 꿰고 있던 시절 말이다. 슈퍼주니어가 몇 명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옛날 사람 아니냐고 묻던 나는 투어스가 몇 명인지 모르는 할머니가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된 나에게도 평생을 응원하고 싶은 최애가 있다.
내 아이돌 그룹은 올해로 6년 차가 되었고, 나는 그의 9년 된 팬이다. 연습생 데뷔 프로젝트를 표방한 프로그램을 통해 덕질을 시작한 덕분이다. 몇 년의 시간 동안 매주마다 한 통씩,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 연습생 시절부터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이른바 ‘중소돌 팬질’에 숨 막혀 휴덕을 선언하고, 3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런 내 아이돌의 최근 콘서트에 처음으로 팬클럽이 아닌 일반예매를 통해 다녀왔다. 콘서트에 갔는데 모르는 노래만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으나, 모르는 노래와 모르는 배우만 나오는 뮤지컬도 보러 가는 판에 내 새끼가 내가 모르는 노래를 한들 무슨 문제가 있으랴 싶어 용기를 내서 예매했다.
새 건전지와 오래된 응원봉, 그리고 애정을 가득 담아 개별 제작했던 오래된 천 슬로건(요즘 팬들도 이런 걸 쓰나…?)을 가방에 넣고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팬클럽 활동은 고사하고 요즘 아이돌들이 소통의 창구로 쓴다는 위버스인지 버블인지도 가입하지 않은 나는, 양일 진행하는 콘서트마다 드레스코드가 있다는 걸 당연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콘서트를 간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너네 아이돌 컬러에 맞는 원피스를 입고 가서 오랜만에 팬질하는 기분이라도 내라며 추천해 준 덕분에 얼추 드레스코드에 맞출 수 있었다. 콘서트장은 집에서 무려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곳에 있었는데, 정말 생전 처음 가는 동네였고, 생전 처음 가는 공연장이었다. 내 아이돌이 처음 공연했던 공연장을 생각해 보면 규모가 작기는 했으나, 덕분에 일반예매자인 나도 망원경 없이 좋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내 아이돌은 하나도 늙지를 않았다. 이제는 20대 후반으로 조금씩 늙을 나이도 되었건만 매일 운동을 하고 건강한 루틴을 유지하는 덕분에 갓 데뷔했던 시절 그대로였다. 갓 스무 살을 넘겼던 앳된 나이에 데뷔를 했던 소년은 이제 제법 훌륭한 연예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여전히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났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출 때 일말의 꾸며냄조차 없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여전히 소년의 무대를 보면서 기특하고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둘, 셋, 안녕하세요! OOO입니다!"로 처음 인사를 하던 쇼케이스 무대와, 소년이 만든 노래를 기쁜 마음으로 들으며 멜로디와 가사에 위로받던 시절들과, 공연을 보러 가겠다며 거침없이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던 시절들이 스쳐갔다. 소년의 평생을 응원해 주겠다는 마음을 떠올리며 오래된 응원봉을 열심히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혹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아이돌이 해체한다고 하면 실제로 팬들이 소속사 앞에서 드러눕기도 했었다만,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K-아이돌 시장에서 아이돌 그룹들은 수많은 결성과 소리소문 없는 해체를 반복한다. 한껏 규모가 작아진 콘서트장에서 나오면서 요즘 아이돌은 주로 몇 년차에 해체하더라,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 해체한 아이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그들의 팬들은 또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내 아이돌의 ‘악개(악성 개인팬)’로서 70세 디너쇼에도 참석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디너쇼 티켓팅을 할 수는 있는 걸까. 문득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그렇기 때문에 팬과 아이돌이 만드는 무대 위 찰나의 순간들이 빛나는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간 콘서트장에는 이제 그전에 알던 팬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출 때 가장 빛나는 내 아이돌은 올해 새 앨범을 들고 컴백을 한다고 한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 이번 앨범이 나오면 또 콘서트를 가야겠다. 다음은 없을 너와 나의 빛나는 찰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