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하루 종일 우다다 뛰어다니며 웃고 떠들던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쾌활하게 놀다가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체했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다. 음식을 입에 대기만 하면 곧바로 토해내고, 설사도 끊이지 않았다. 열도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움이 밀려왔다.
몸이 아픈 건 아긴데, 마음은 우리가 더 아팠다.
급히 응급실로 향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담당 전문의가 없어 진료가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다른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만 반복되었다.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해열제를 먹이고, 수분을 조금씩 보충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이런 순간이 오면 병원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라는 말이 얼마나 먼 이야기인지 체감한 저녁이었다.
겨우겨우 열이 좀 가라앉자, 우리는 아기의 상태를 다시 살펴봤다.
혹시 뭘 잘못 먹였나? 외출했을 때 접촉한 사람이나 물건이 있었나? 불안한 마음에 인공지능 챗봇에게도 묻고, 검색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는 말뿐. 결국 가장 기본적인 관리 — 체온 유지, 수분 보충, 자극 없는 식사 —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밤새 아이를 안고 재우고, 다시 깨고, 울고, 달래고… 그렇게 길고 긴 밤을 보냈다.
겨우 날이 밝았을 때, 아기의 이마는 다시 뜨거워졌다. 회사고 뭐고 일단 병원으로 달려갔다. 피검사, 소변검사, 여러 검진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래도 상태는 전날과 다를 바 없었다. 아기는 전날 보다 기운이 없는지 힘없이 멍하게 서있거나 앉아만 있는 시간이 길었다.
우리 부부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 아기는 결국 입원했다. 병명은 노로바이러스였다. 전염성이 강하다는 말에 우리는 아기가 용변을 볼 때마다 즉시 치우고, 씻기고, 환기하고, 손을 수십 번씩 씻었다. 혹시라도 재감염이 되지 않도록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병실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아기보다 우리가 먼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밤새 앉은 자세로 안고 재우고, 울음을 달래고, 아픈 배를 문질러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체력은 바닥났고, 정신은 흐릿했다. 그런데도 내 옆에서 아기의 짜증과 투정을 묵묵히 받아주는 아내를 보며 나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봤다.
한없이 약한 존재를 위해 자신을 잊고 버티는 힘. 아마 그게 부모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이자 깊이일 것이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아이가 아픈 만큼, 나도 함께 아팠고, 그만큼 마음도 성장했다. 내가 잘 버티는 게 중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내가 견뎌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배웠다. 예전 같았으면 짜증부터 냈을 상황에서, 조금 더 기다리고, 더 참으며, 아기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부모다워진 것 아닐까.
아기의 회복과 함께 우리도 회복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의지가 남았다.
아기의 첫 입원은, 우리 부부에게는 부모가 되는 첫 ‘성장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