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누구나 말하길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사랑스러운 눈빛, 깔깔 웃는 소리,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는 그 느낌은 분명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순수하고 깊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묻고 싶다.
“아기랑 한 시간만 제대로 놀아보신 적 있나요?”
처음에는 단순했다.
‘아기 기준에서 맞춰주면 되지’, ‘재미있게 놀아주는 게 부모 역할이지’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란 걸 금방 깨닫는다.
우리 아이는 역할놀이를 특히 좋아한다.
장난감 병원놀이 세트, 인형을 손님 삼은 마트 놀이, 엄마 아빠 흉내를 내는 소꿉놀이까지, 무궁무진하다.
처음엔 나도 아이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함께 웃고 떠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복’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같은 대사를 수십 번 반복하고, 똑같은 상황을 다시 연기하고, "아빠!"라는 말에 아무 말 없이 또 누워야 할 때, 어느 순간 머릿속이 멍해진다.
특히 내가 평소 ‘교육적인’ 기준을 가지고 놀 때는 더 빨리 지친다.
예를 들어 마트놀이를 하면서 숫자 공부를 시도하거나, 역할놀이를 통해 예절이나 규칙을 알려주려 할 때, 아기는 점점 흥미를 잃고 나는 점점 짜증이 밀려온다.
결국엔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은 자괴감까지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아기에게 맞춘다는 게 단순히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잠시 비우는 것’이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된다.
육아에서의 놀이란, 단순한 시간을 채우는 게 아니다.
아기에게는 매 순간이 새롭고 의미 있다.
내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활동조차, 아기에게는 세상을 배우는 하나의 문이다.
엄마, 아빠의 말투, 표정, 움직임까지 모든 게 교과서다.
그러니 아이는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걸 알면서도, 부모인 나는 자주 ‘버겁다’고 느낀다.
놀이 시간 한 시간이 운동 두 시간보다 더 피곤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아이의 에너지는 끝이 없고, 부모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와 논 후에는 꼭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도 체력훈련 끝났네. 내일도 준비해야지.”
이렇게라도 말해야 내 마음이 버틸 수 있다.
육아가 ‘감정 노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아기와의 놀이는 감정을 다 쓰고, 체력도 다 쓰는 고강도 활동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희생만 있는 게 아니라, 분명한 ‘성장’도 있다.
나는 아이와 놀며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예전엔 효율을 따졌지만, 지금은 ‘과정’을 더 바라보게 된다.
예전엔 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엔 ‘잘 놀아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저 같이 있는 부모’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들면 한결 편해진다.
나를 몰아붙이거나, 아기에게서 뭔가 ‘성과’를 얻으려 하지 않게 된다.
그냥 그 시간 안에 머무는 것.
같이 웃고, 같이 지치고, 같이 나른해지는 것.
그게 우리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아기와의 놀이는 늘 내가 이끌어야 할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아이에게 이끌려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지루함을 견디는 힘, 즉흥적인 반응을 받아들이는 유연함,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태도.
어쩌면 아이는 매일 나에게 명상을 가르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너무 완벽하게 놀아주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지금 아이와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하루의 끝,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땀에 이마를 닦으며 생각한다.
‘오늘도 잘 놀았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