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하루가 가르쳐준 것

by 볼통통알파카

언젠가는 아플 거라는 불안함이 현실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몸이 조금 피곤하더라도 ‘조금만 버티자’ 하고 넘기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자잘하게 피곤하고 아픈 날들이 이어지더니, 한 달이 지나자 몸이 내 마음을 전혀 따라주지 않았다. 기운이 빠져서 앉아 있다가도 숨이 가쁘고, 손발이 무겁게 느껴졌다.


잠시라도 쉬어야 회복이 될 텐데, 아이는 그런 사정을 모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를 부르며 장난감을 가져오고, 같이 놀자고 손을 잡아끈다. 눈앞에 있는 그 작은 손을 뿌리칠 수 없어 억지로 몸을 일으키면서도, 속으로는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몸이 한계에 다다르자 하루 종일 앓아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차라리 돈이 많으면 도와줄 사람이라도 구해서 쉴 수 있을 텐데.’

‘돈 걱정이 없으면 이렇게까지 무리하다가 아플 이유도 없을 텐데.’

그 생각은 금세 꼬리를 물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돈, 아플 때 의지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아예 아프지 않게 해주는 좋은 음식과 환경. 모두 돈과 연결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때 불현듯 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아빠는 아프더라도 주말에 몰아서 아파야 해.”

그 말을 들었을 땐 ‘어쩜 저렇게 무심하고 냉혹한 말을 할까’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겠다. 아이를 돌보는 부모에게 평일 아픔은 곧 생계와 직결된다. 주말에 아프면 적어도 일은 미루지 않아도 되고, 병원에도 비교적 여유 있게 갈 수 있다.

그래서일까. 누워 있으면서도 ‘그래도 주말이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이었다면 아이 어린이집 보내고 일까지 챙겨야 하니 훨씬 더 버거웠을 것이다. 주말이니 이렇게 누워 있을 수 있는 거고, 아침부터 병원 문 열자마자 갈 수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마음이 가벼워진 건 아니었다.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결국 모든 게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결론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이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아프면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가 무너지고, 아내의 하루까지 무너진다. 돈보다 먼저 챙겨야 할 건 결국 건강이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내 마음 한구석에 있던 자기검열이 보였다. ‘아빠는 무조건 강해야 한다’, ‘힘들어도 티 내면 안 된다’는 생각. 나도 모르게 그런 틀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아파보니, 강한 척한다고 해서 더 좋은 아빠가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가족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옆에 와서 내 몸에 청진기를 대면서 토닥였다. 마치 “아빠, 괜찮아?” 그렇게 물어보는 듯 했다. 이런 행동 하나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내가 누워 있는 하루가 이 아이에겐 ‘아빠가 많이 힘들구나’라는 마음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아플 수 있고, 쉬어야 한다는 걸 배우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픈 와중에도 감사할 일이 있었다. 아이가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 아내가 챙겨주는 따뜻한 죽 한 그릇,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 건강이 무너지면 이런 사소한 행복을 느낄 여유도 사라진다.

그래서 오늘 결심했다.

다시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무리한 일정에서 하루 30분이라도 빼서 운동을 하고, 잠을 줄이지 않으며, 작은 불편을 참고 미루지 않기로. 그리고 무조건 참는 아빠가 아니라, 필요할 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아빠가 되기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돈이 많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건강하고, 아이가 나를 믿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최고다. 아픈 하루 덕분에 그 사실을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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