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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Jul 04. 2023

런치 전쟁 후 비로소 런치

파스타와 미나리 피클의 조합은 훌륭하다.

5월부터 공휴일이 많고 기본적으로 큰 소비가 많아서 그런지 늘 사람이 붐비던 건물 1층이 조용했다. 그런 탓에 자연스럽게도 우리 매장과 마주 보고 있는 이웃 식당 분들과 교류의 시간이 많았다. 사실 바쁘던 안 바쁘던 매일 서로서로 발도장 찍는 것이 의무 아닌 의무가 되었지만.


내가 운영하는 카페는 메디컬센터 건물 로비에 자리하고 있지만 흔히들 말하는 점심피크 시간은 대부분 병원으로 유입되는 사람들보다 식당 손님들이다. 자식 같고, 조카 같다고 나를 많이 예뻐해 주시는 사장님께서 식사하고 나오시는 단골 분들께 부러 커피 이야기를 하셔서 우리 가게로 보내 주시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저기랑 여기랑 같은 집이에요?" 묻는 분들도 계신다. 


도시락을 준비 못 한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점심 장사가 끝나갈 무렵 이웃집 사장님께서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미시더니 말씀하셨다. "커피야, 점심 먹자! 셰프님이 파스타 만들었어!"

사장님이 말씀하시는 셰프님은 바로 사장님의 큰 따님인데 몇 달 전부터 합류해서 앞집의 주방을 책임지고 계시는 분이다. 몇 번 셰프님이 만든 음식을 맛본 적 있는데 손맛이 보통 아닌 게 이럴 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쓰는 게 아닌가 싶었다. 유명한 남도음식 전문점을 운영하시는 사장님과 셰프님 모녀의 손맛은 그야말로 예술이니까.


점심시간이 끝난 식당에는 손님들이 다 빠져나갔다 하더라도 치열한 공기가 남아있다. 식당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일도 너무 많고 그만큼 여러 방면으로 소모도 크다. 그렇게 고생하신 분들 사이에서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앉으면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할 정도.

음식을 다루는 영화 속에서 보면 꼭 한 번씩 나오는 장면이 '런치 전쟁 후의 런치 타임'인데 셰프와 그의 크루가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고급 요리인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투박하게 느껴진다. 손님들에게 나가는 음식은 플레이팅이나 접시 하나마저 신경 써서 내지만, 실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말. 진짜 우리네 삶 그대로를 표현한 말인 것 같다.


"잘 먹겠습니다!" 크게 인사하고 파스타를 한 입 크게 먹었다. 양식을 잘 먹긴 하지만 먹고 나면 보통 느끼한 맛만을 남기는 장르라 많이 먹지 못하는 편인데 한정식 집의 옹골진 접시에 담긴 푸짐한 파스타가 후루룩후루룩 금세 내 입속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갔다. 진짜 빈말이 아니라 나는 그렇게 풍미가 깊은 파스타를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감동이 컸다. 게다가 셰프님이 먹어보라고 건네주신 미나리 피클! 이게 별미였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미나리 피클을 한 입 먹는 순간 그동안 존재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 억울할 정도로 내 취향의 곁들임이었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전문가는 괜히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 음식도 조합을 생각하고 먹어야 하니까. 런치 전쟁이 끝나고 얼른 허기를 해결하고 브레이크 타임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대충 담아낸 식사의 모습이 투박해 보일지언정 본질은 잃지 않았다. 내 입도 한 까다로움 하는데 매번 충족이 되는 걸 보면 이거야말로 찐찐찐찐 찐! 아닌가.


글을 쓸수록 파스타와 미나리 피클의 조합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메인을 빛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서브지. 이런 조화를 사장님과 셰프님도 닮아있다.

사장님은 매장 내에서는 엄격한 오너지만 잠시 앞집에 들러 커피를 마실 때는 영락없는 엄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 누구 이거 좋아하는데. 우리 누구 반은 갖다 줘야지."

셰프님 역시 오너가 엄마라고 일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두 사람 다 과연 프로답다.


최근 고의로 악의를 담은 리뷰 때문에 두 분이 속상해하는 걸 보았다. 없는 말은 신경 쓸 필요도 없지만 요리와 음식에 진심과 노력만을 담는 사람에게는 그 없는 말이 화살이 되기도 한다. 이는 가게를 운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부분일 테다.


적어도 진심은 눈에 보인다. 내가 보는 사장님과 셰프님의 진심은 한결같음을 지키면서도 그 이상도 추구하는 자신감과 진취적임이다. 나는 오늘도 그 진심을 응원한다.


글을 쓸수록 파스타와 미나리 피클의 조합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메인을 빛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서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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