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부터 8월까지 꼬박 두 달 반동안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개인적 사정으로 면허를 따지 않아 당연히도 자차가 없어 쨍한 더위가 시작되고 그 더위가 가실 무렵까지 창원의 모든 동네를 걸어서 돌아다녔다. 부동산의 운영시간에 움직이려면 태양을 피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내 얼굴은 시뻘겋게 익어버렸다.
걷다가 더워서 기절해 버릴 것 같으면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잔을 사 마셨다. 그렇게 아이스커피로 충전을 하고 체온이 좀 내려간 것 같으면 다시 나와 걷기를 반복했는데 그 잠시동안에도 '나도 적당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과 고민뿐이었다.
누구의 지원도 없이 혼자 준비하는 거라 월급을 받고 지내던 때처럼 생각 없이 돈을 쓰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안 마실 수도 없어서 평소 좋아하던 비싼 핸드드립 커피를 참고 저렴한 가격의 테이크아웃 전문점 커피를 마셨다. 땡볕에 돌아다니면 자주 목이 말라 물을 사 마시는 일도 잦았는데 그 돈도 아끼려고 무거운 텀블러에 얼음을 가득 채워 들고 다녔다. 처음 준비해 간 얼음물을 다 마시고 물이 필요할 때는 부동산에서 양해를 구하고 정수기를 쓰곤 했는데 그럴 때면 뭘 먹는 거나 사는 것에 염두하지 않고 돈을 쓰던 내가 이렇게도 살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운 날씨에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면 차가운 맥주가 간절했고 어디 시원한 데 들어가서 맛있는 안주에 한잔하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매번 마트로 가서 소위 말하는 가성비 맥주를 사가지고 들어가 집 반찬에 대충 한잔 하고 말았다.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됐는데 두 달이 가까워져 올 때까지 상권 분석 점수가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시간과 돈만 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머릿속엔 오로지 돈돈 돈에 대한 근심뿐이었다. 머니머니 해도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안 하던 생각까지 하게 되는 나를 보며 집안환경 탓에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냈고 사회인으로 나름의 능력을 갖고 돈에 구애를 받지 않고 살고 있었는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잘 살아보려고 하는 일인데 못 살 것만 같은 생각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이성을 잃고 내가 보는 자리 전부가 괜찮아 보이는데 상권분석 미달이라는 결과에 반발심이 들기도 했다. 사춘기를 겪을 새도 없이 10대가 지나가버렸던 나는 30대가 되어서야 질풍노도를 겪는 듯했다.
잘할 수 있을 거야. 잘 될 거야.
매일 주문을 걸 듯이 속으로 내게 말했다. 이런 게 뭐라고 잠시나마 힘과 희망이 생겼는데 어떤 날에는 실낱같은 희망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나를 좀먹을수록 외로움을 느꼈다. 좀처럼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인데도.
이제 정말 돌아볼 동네도 없다는 사실에 허탈함을 느끼며 집으로 가다가 떨어져 버린 신발을 보았다. 얼마나 걸어 다녔으면 새로 산 여름 신발 바닥까지 다 떨어졌을까. 내 기분도 바닥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올라가려던 나는 방향을 틀어 걸어갔다. 종일 걷고도 또 걷는 발걸음은 터덜터덜, 영혼은 너덜너덜. 참 웃긴 게 신발이 떨어졌음을 인지하고부터 발바닥도 아파왔다.
느릿느릿 걸어가다가 작은 술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우 스지를 파는 곳인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한우라면 비싸겠지 하는 생각부터 퍼뜩 들었는데 오늘은 비싸도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그놈의 돈 생각을 얼른 밀어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스지집은 바 테이블이라 혼자서도 부담 없이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뒤이어 들어올 사람들을 생각해서 구석 자리에 앉아 스지와 소주를 주문했다.
스지라는 것을 처음 먹어본 날이었다. 세상에나 스지 너 이렇게나 맛있을 일이야..
감탄하며 천천히 먹는데 사장님께서 맛이 괜찮냐고 물으셨다. 영업하는 사장님의 단순했던 그 물음은 내 입을 열게 했고 마음까지 열어 나의 상황에 대해 하소연하게 했다. 모든 게 평소와 다른 날이었다.
"열심히 알아보고 계시니까 금방 찾을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힘내세요!"
나와 마찬가지로 혼자 영업하는 가게의 사장님은 내게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분 답게 눈빛도 선하고 강했다. 그 눈빛에서 오는 믿음이 있었고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내게 자주 오지 않는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스지집을 찾는다. 작은 공간이 항상 꽉 차 있어 주방에서 바쁜 사장님과 처음 그날처럼 긴 대화를 나누진 못해도 잠시 나누는 인사와 사장님의 미소, 그 공간에서 나는 좋은 냄새와 스지 국물의 온도에서 뜨거운 마음과 힘을 얻는다.
사장님의 말 한마디는 한때 유행했던 주문처럼 아브라카다브라가 되어 금방 내 자리를 찾게 만들었다. 과정 중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장사를 시작하고 매달 꾸준히 늘어가는 매출과 단골손님들을 보면 지난 시간의 힘듦이 보람차다. 그러면 뿌듯함에 나의 피땀눈물을 쏟은 이 가게도 작지만 누군가에게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욕심까지 부리게 된다. 아브라카다브라! 말하는 대로 되려면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
장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다른 문제가 있어 요즘 또 스트레스가 심하다. 스트레스의 정도가 극한에 달할 때면 돌연 외로워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조만간 스지를 먹으러 가야 할 것 같다.
스트레스의 정도가 극한에 달할 때면 돌연 외로워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조만간 스지를 먹으러 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