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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Oct 17. 2024

답은 정해놓고 왜 물어보세요?

내가 운영하는 카페는 메디컬센터 건물의 1층에 자리하고 있어서 문을 열고 로비와 이어지는 형태로 영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인테리어다.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손님이 아닌 누구든지 와서 화장실의 위치라던지 무슨 병원이 몇 층에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귀찮은 티 한번 내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드린다. 바쁜 때가 아니고서야 번거로울 일도 아니니까.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한 남성이 문에서 1미터쯤 떨어져서 흘끔거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뭘 물어보고 싶은데 망설이는 건가 싶어서 그 사람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성큼 문 앞으로 다가오더니 냉큼 내게 물었다.


"커피 냄새가 정말 좋네요. 영원히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응?

뜬금없는 질문에 커피 냄새가 좋은 것과 영원히 행복한 삶은 대체 무슨 관계인지 내가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와중에 그 사람은 객관식의 답안지를 들고 있었다.

1번. 그렇다

2번. 아니다

3번. 잘 모르겠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3번을 택했을 것 같지만, 그리고 이런 질문에 내가 왜 대답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나치게 현실주의자인 나는 2번이라고 대답했다. 나의 단호한 표정과 대답에 굉장히 당황한 듯한 그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행복을 어떻게 영원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현대에도 역병이 돌고 전쟁이 일어나는걸요."

그런 나의 말에 백 번 천 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그 사람은 이어 대답했다.

"네. 아닙니다. 영원히 행복한 삶은 가능합니다."


응?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네-는 뭐고 아닙니다-는 또 뭐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그 사람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신은 말이죠. 인간이 영원히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법이나 규율 같은 정해져 있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끊은 건 나였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오늘은 노력하겠지만요. 내일도 당연하다는 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네요.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동그란 얼굴 탓에 거절 못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나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 당황하는 상대방을 많이 보았다. 내 눈앞의 사람도 그중 하나였다. 답을 정해놓고 물어봤지만 포섭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사람은 갑자기 나에게 사장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아이고 이 자리에 하시면 월세가 많이 나가겠네요. 많이 파세요."


응?

또, 뜬금없이 월세 이야기를 꺼내며 쓸데없는 말을 혼자 마구 하더니 건물 밖으로 나가는 그 사람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당신이 믿는 신은 인간이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하신다더니 자본주의는 도리가 없나 보죠?' 하고 말이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점심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엄마가 조카를 데리고 매장에 놀러 왔다. 조카에게 빵을 내어주는데 손님 한 팀이 들어오시길래 인사를 하고 봤더니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그때 그 사람이었다. 기분이 싸했지만 고객으로 방문한 거니까 평소처럼 친절하게 응대했다.

주문한 커피를 받은 그 사람은 내게 "지난주에 여기 근무하셨죠? 혹시 저 기억나시나요?" 하고 물었고 나는 기억이 난다고 대답했다. 굳이 왜 또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날 나는 그 사람들이 말을 걸 시간이 없을 정도로 계속 바빴다. 하지만 그들이 앉은 바로 옆 테이블에 엄마와 조카가 있었기에 포섭의 방향이 그리로 흘러갈까 봐 바쁜 와중에도 귀를 쫑긋하고 커피를 내리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엄마에게 조카가 몇 살이냐고 묻고 있었다. 조카를 두고 이상한 말을 시작하면 당장이라도 가서 뭐라 그럴 참이었는데 그 사람들은 조카를 보며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이!" 마치 구호라도 외치듯이 말하고는 마시던 커피를 원샷하고 나가는 거였다. 누가 봐도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보아하니 나 하나를 그들이 정한 답에 옭아매려고, 그러니까 내게 자신들이 모시는 신과 믿음을 영업하려고 셋이 한 팀이 되어 다시 찾아온 것 같았는데 그들이 막무가내로 그러기엔 내가 너무 바빴다. 그렇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퇴장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니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순간에는 믿음을 잃었나 보다.

거 봐요. 당장 나중의 일도 모르는 거잖아요.



세상에는 참 별별 사람 다 있다.

예전 같으면 뉴스나 보면서 했을 이런 생각을 커피 하는 일상 속에서만 해도 숨 쉬듯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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