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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Oct 17. 2024

어른이는 어린이를 이길 수 없다

어른이가 어린이를 이길 수 있을까. 무력으로는 당연히 이길 수 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그럴 수 없다. 내 기준으로는 절대, 절대 없다. 나 역시 조카를 못 이기는 이모로 살고 있니 말이다.


병원 건물 로비에 아침 일찍부터 문이 활짝 열려있는 나의 카페는 꼬마 손님들의 입장에서는 지나치기 힘든 곳이다. 엄마, 아빠를 따라 약국을 가다가 꼭 지나치게 되는 밝고 작은 가게는 쇼케이스부터 보이고 유리 너머에 뽀로로 음료와 선명한 색을 띠는 과일이 보이고 바로 옆에 자리한 나무로 만든 진열장에는 빵과 쿠키가 가득 보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엄마 손을 잡은 꼬마 손님이 오셔서는 갓 구운 크로와상을 가리키며 그걸 먹겠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당차고 귀여워서 '녀석 주관이 넘치군' 생각하며 웃고 있었더니 꼬마 손님은 내게 물었다.

"이모 기분 좋아?"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대답을 못 했는데 어머님께서 대신 대답을 하셨다.

"이모 기분 좋지. 왜 안 좋겠어~ 네가 크로와상 사 먹는데."


계산해 드리다가 웃음이 터져 주저앉을 뻔했다. 생글생글 본인도 웃고 있으면서 내가 웃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냐고 묻는 꼬마와 현실적이면서 유쾌한 대답을 내놓으신 엄마 손님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



그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건물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고 문이 열리자마자 매장의 쇼케이스 앞으로 달려온 꼬마 손님.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뒤이어 온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여기에 크고 동그란 거~ 오렌지 색깔 같은 거~ 뭐예요?"

질문 자체가 귀엽고 순수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꼬마가 물어본 오렌지 색깔의 그것은 바로 오렌지였기 때문이다.



또 어떤 날. 한 꼬마와 엄마가 손님으로 오셨는데 병원 진료시간을 기다리며 빵과 음료를 주문하고 앉아 계셨다. 꼬마 손님은 이 작은 매장 안에서도 뛰고 싶은지 왔다 갔다 뛰어다니다가 커피바 문 옆에 기대어 이렇게 말했다.

"아, 뭐 재밌는 거 없나?"

정말이다. 정말 저렇게 '아' 뒤에 쉼표가 붙을 만큼의 여백과 한숨이 있었고 이미 사회생활 한 3년 차쯤 돼서 슬럼프가 온 사람처럼 진심으로 재밌는 거 없나 혼잣말을 했다. 나는 또 참을 수가 없어 소리 죽여 웃었다.



얼마 전에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한번 보고 쓱 지나간 꼬마가 약국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엉엉 울면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약을 먹기 싫어서였을까. 서럽게 우는 아이에게 귀 기울이고 있었는데 집중하고 들어보니 아이가 하는 말은.

"허어.. 엉... 뽈로.. 뽀로로... 뽀로로가 먹고 싶단 말이야..."

아이는 매장 앞을 지나가면서 뽀로로 음료수를 발견했고 그게 먹고 싶었던 것이다. 먹고 싶은 음료수 하나에 온 마음을 다해 어제 이별한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는 순수함. 이건 아이들만이 가능한 사랑스러움이다.



영화 <신의 한 수>에서 주님은 량량이 두는 바둑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순수한 아이가 두는 바둑은 너무 유연해서 꺾을 수가 없다고, 부러지지가 않는다고.


아이의 순수함은 이토록 힘이 세다. 모두가 그 순수함을 내도록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무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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