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이 날 정도의 어린 시절부터 쭉 엄마는 담배를 폈다. 어릴 땐 좋지도 않은 담배를 피우는 엄마를 보는 게 짜증 났지만 그런 표현을 하진 않았다. 담배 냄새를 힘겨워하는 청소년의 내가 딱히 싫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면 엄마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뜨끔하며 고개를 돌리곤 했다.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도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가 좀 컸다고 그때부턴 싫은 티를 내기 시작했다.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부턴 생각도 말도 이미 확고해져 있던 나이의 나는 무슨 말을 하든 담배에 빗대어 비꼬아 말했다. 엄마를 할 말 없게 만드는 건 나의 특기였다.
"니는 몸에 좋은 오이를 안 먹노."
"엄마는 그럼 왜 몸에 안 좋은 담배를 피우는데?"
"밥 먹으면서 물 마시는 거 안 좋다."
"엄마도 안 좋은 거 알면서 담배 피우잖아."
"이런 거 좀 쓸데없이 사모으지 마라."
"엄마는 쓸데없는 담배나 사 피지 마라."
엄마가 어떤 잔소리 공격을 하든 나는 이런 식으로 받아쳤다. 그런 말을 들으면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한 번 흘겨보고 말곤 했다. 아마 그 정도였다면 그냥 애교로 넘어갔을 테다. 언젠가부턴 악담도 퍼붓기 시작했다.
골초.
감히 엄마에게 이런 단어를 쓰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그러다 큰 병나면 그거 누가 다 감당하느냐고, 엄마 때문에 내가 암이라도 걸려서 죽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듣는 엄마 입장을 생각하지도 않고 서슴없이 나쁘게 말했다.
엄마가 혼자 살던 집에 들어와 동거를 시작했을 때는 장기간 다툼도 일어났다. 실내에 재떨이를 두고 담배를 피우던 엄마, 변비가 심해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볼 때는 꼭 담배를 태워야 하는 엄마와 매일 싸웠다. 어릴 때는 내가 그냥 참았지만 이제 나도 성인이고 생활비도 내고 싫은 건 싫은 거니까 이 부분은 맞추라며 엄마에게 반 협박을 하며 투쟁하여 종국에는 승리했다.
여러 부분 맞춰가며 엄마와의 동거 생활에 익숙해지던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마당 한쪽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엄마 뒷모습을 보는데 그게 그렇게 애잔했다. 바깥은 겨울. 담배 냄새에 예민한 딸과 싸우다 집 안에서 편하게 피우지 못하고 집밖으로 내몰린 엄마는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한편으로는 추위에 덜덜 떨어가면서까지 담배라는 것을 꼭 피워야 하나 싶었다.
30대의 나는 생각이 차고 넘쳐서 스스로를 괴롭힌 적이 많다. 삶이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술을 찾았다. 누가 내 삶을 실시간 카메라로 찍고 있다면 보는 모두가 내게 알코올중독이라고 말했을 거라 생각이 될 정도로 매일 술을 마셨다. 역대급 체중을 찍은 나를 보며 엄마가 잔소리할 때 듣기 싫다며 내 귀를 막고 엄마 입을 막았다. 다행히 엄마는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2절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았다. 엄마가 그 이상을 하지 않은 것은 엄마의 공감에서 우러난 태도였다는 것을.
엄마는 딸의 말대로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를 끊지 못하고 피우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말했다. 사는 게 힘들어서라고 했다. 이런 낙이라도 없으면 살 수 없다고 했다.
낙.
엄마에겐 낙이 없었다.
가난으로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집안 일과 동생들을 돌보기 시작했던 엄마에게는 취미도 특기도 없었다. 엄마의 삶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 겨를을 주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나는 혼자 축구장엘 가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면 그만이었지만 엄마는 담배 이상의 낙이 없었다.
나는 그날만큼은 엄마의 흡연에 관해 잔소리하지 않았다. 평소의 나라면 합리화하고 있다며 받아쳤을 텐데. 내가 인생의 고단함을 술을 마시며 풀 듯 엄마도 담배를 피우며 푸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비로소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는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의 나는 오로지 담배 냄새가 싫어서 엄마의 흡연을 두고 싸웠지만 지금의 나는 오로지 엄마의 건강을 생각해서 싸운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