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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의 행운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by 김커피

12월 보통날의 후쿠오카. 기상청의 예보와는 다르게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졌다. 여행 내내 묵었던 숙소와 가려던 식당의 딱 중간쯤 되는 그러니까 아주 애매한 거리에서 오른쪽 몇 걸음, 왼쪽 몇 걸음씩 종종거리며 고민하고 있었다.

호텔로 가서 우산을 빌려올까?

그냥 비 맞고 가서 멎을 때까지 가게 안에서 머무를까?

몸도 마음도 갈팡질팡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내 눈에 들어오던 현지 사람들.

후쿠오카 사람들은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익숙한 듯했다. 비가 내리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지도, 종종걸음을 걷지도 않았고 하던 대화를 멈추지도, 가던 길을 멈추지도 않았다. 단 한 명도.



일기예보와 다르게 비가 내릴 때 '어디 가려고만 하면 비 오는 이유?' 하며 마치 이건 내 탓이오! 외치듯이 스스로 묻던 내게 그 장면은 드라마틱했다. 비를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듯, 비가 오는 것은 큰 일도 아니라는 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이미 다 아는 표정의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한국에서 이런 얼굴들을 본 지 오래였다. 우리는 왜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사는 걸까?


하루라도 생각을 달리 해보고 싶었다.

하필 돌아가는 날에 비가 왔다고

옷이 젖었다고

곱슬머리가 엉망이 됐다고

캐리어를 끌고 공항까지 가는 길이 찝찝하다고

듣기만 해도 짜증 날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이럴 수도 있지.

이런 일도 있지.

그저 여행의 끝이 아쉽다는 미소만 지으며 출국수속을 마쳤다.


타지에서의 여유를 여행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러 가기 직전에 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여유를 찾으러 다시 돌아왔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일도 있지.

내려놓으면 훨씬 편해지는 마음을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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