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가 생기를 찾는 방법
지난 주말, 시어머니께서 근처에 일이 있어서 오셨다가 우리 집에서 하루 묵고 가셨다.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주무시고 간 건 결혼 12년 차만에 처음이었다. 오해가 있을까 봐 미리 이야기하자면 친정부모님 또한 단 한 번도 우리 집에서 주무신 적이 없다. 시가와 친정 모두 서울이고, 우리 부부 또한 서울 혹은 서울 근교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서로의 집에 묵어갈 필요가 없었다.
지난 주말은 비상 상황이 있었던 데다, 어머니께서 거처를 잠시 먼 곳으로 옮기셨기에, 우리 집에서 묵어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토요일과 일요일 꼬박 1박 2일을 시어머니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길게 함께 시간을 보낸 건 신혼 초 내가 멋모르고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에 여행을 갔다 온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후로는 절대 시부모님과 여행을 갈 상상조차 안 한다.)
시어머니와 나는 자연스럽게 만났더라면 절대로 친구가 되지 않을 그런 상반된 성격이다. 시어머니는 나를 별로 안 좋아하시고, 나도 시어머니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건, 시어머니도 알고 나도 알고 남편도 알고 두루두루 아는 기정사실이다. 그래도 시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싫어할 뿐 서로를 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굳이 친해지려 하지도 않는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며느리가 어머니께 고분고분한 맛도 없고 싫은 것에는 싫다고 말하며 음식과 물건에 까탈스러운 게 싫으시다. 나는 어머니가 음식을 드시는 속도와 방식에 적응이 안 되고, 때때로 무례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고, 옷을 아무 데서나 갈아입으시고, 만날 때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걸 타박하시는 게 싫다.
그러나 어머니는 며느리가 솔직하고 뒷면이 없는 걸 좋아하시고, 싫은 소리는 할지언정 용돈이든 선물이든 잘 챙기고,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나서서 시원하게 화내주는 걸 좋아하시며, 특히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은 면을 높게 사신다. 그리고 나 또한 어머니의 순수하고도 천진한 면이 소녀 같다고 생각하며, 이 시대의 최고의 칠 가이라고 할 만한 유유자적한 태도가 부럽고,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으며 무던한 것, 그리고 어디서든 즐겁게 놀 거리를 찾는 밝은 성격이 좋다.
어쨌든 시어머니를 우리 집에서 주무시게 한 건 처음이었고, 그 1박 2일 동안 나는 제대로 매콤한 맛을 봤다.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거나 큰 소리가 나거나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 잠깐 동안 저녁은 외식을 했고, 단 한 번 차린 아침상은 간단하게도 떡국으로 내었다. 그런데도 얼마나 신경이 쓰이고 어렵던지. 같은 떡국을 끓여도 남편과 아이한테만 낼 때와는 다른 긴장감이 있었다. 수십 년 일찍 태어나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일상인 세대였다면 나는 금방 말라죽어 단명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적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새삼 느꼈다. 아이가 있어서 소란스러운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야말로 정적을 그냥 두지 않으시는 시어머니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하셨고, 그 말들 중에는 당연히 말실수라고 해도 좋을만한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집을 떠나시기 직전에는 어김없이 하나님을 안 믿는 타박을 빠뜨리지 않고 하셨다.
시어머니와 1박 2일을 매콤하게 보내고 나니, 월요일에 다시 맞은 나의 평온한 일상이 너무나 소중했다. 집안일을 해도 흥이 났고, 요리를 하면서도 즐거웠고, 저녁에 아이 숙제를 봐주면서도 마음이 가벼웠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겨우 이런 일들 좀 한다고 버거워하고 지루해했다니. 나란 녀석, 나약했구나. 세상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동안 살림하고 육아하느라 치여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나약함이 우스워졌다. 전업주부인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한 주말 덕분에 오랜만에 생기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