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최애 가전
2015년부터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만 십 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이사 간 아파트에 빌트인으로 설치된 식기세척기가 있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전 집주인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새 거지만 5년 묵은 식기세척기였다.
사용해 보니 그릇이 어찌나 반짝반짝하고 깨끗하게 세척되는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그때는 나 빼고 주변 친구들은 아무도 식기세척기를 쓰지 않고 있었다. 나는 식기세척기 전도사가 되었다. 그게 벌써 십 년 전이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 식기세척기는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식기세척기가 고장 나서 한 달 정도 사용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때는 아이를 낳기 전이라 부부 둘이 사는 살림에 식기세척기 없이 살아볼까 하고 새 식기세척기를 사는 것을 미적거렸다. 식기세척기 없는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은 부부싸움을 했는지. 설거지라는 한 가지 집안일이 조금 더 과중되었을 뿐인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루 두 끼에서 세 끼를 집에서 먹으면 설거지도 그만큼 해야 되니까. 우리 부부는 이제 식기세척기가 없으면 안 된다.
설거지하는 시간이나 애벌 설거지 후 식기세척기에 넣는 시간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들어가는 노동력이 다르다. 특히 나처럼 팔 힘이 약해 팔을 쓰는 집안일에 취약한 사람에게는 식기세척기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된다. 대충 큰 덩어리만 헹궈내고 착착 집어넣으면 알아서 그릇이 뽀드득 깨끗해진다. 식기세척기가 일을 하는 시간은 한 시간이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 좀 오래 걸리면 어떤가.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잔여 세제에 대한 걱정 때문에 식기세척기 사용을 꺼리는 사람도 있다. 식기세척기 회사에서는 손 설거지보다 식기세척기를 사용했을 때 잔여 세제량이 훨씬 적다고 말한다. 나는 타블릿 세제를 쓰는데, 하나를 반으로 잘라서 정량보다 적게 쓴다. 대신 애벌 설거지를 조금 깨끗이 하는 편이다. 세제를 적게 써도 고온 고압의 물줄기로 그릇을 세척하기에 충분히 깨끗해진다. 세척 코스가 끝나고 나면 세제 없이 속성으로 한 번 더 세척을 돌린다. 그리고 고온 건조 모드는 쓰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잔여 세제에 대한 걱정을 던다.
식기세척기마저 없었다면 나는 아예 집밥을 하는 걸 포기했을는지도 모른다. 집안일 중에 가장 과중한 게 주방일이다. 장 보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주방청소하고 등등. 식기세척기가 있기에 팔 힘이 약한 약골도 힘을 내어 국도 끓이고 반찬도 한다. 식기세척기를 쓰면 가장 좋은 점이 설거지 걱정 없이 식기류를 팍팍 사용하면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손설거지를 한다면 요리를 할 때 설거지 거리를 줄이려는 노력까지 더해진다.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별 거 아닌 게 아니다.
지나치게 식기세척기에 의지한 삶이 아닐까 싶지만, 의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누구는 에어컨을 발명한 사람을 최고의 발명가로 꼽는다는데, 나는 식기세척기를 발명한 조세핀 코크렌(Josephine Cochrane)이 내 마음속 은인이다. 이름을 봐서 역시 식기세척기를 발명한 사람은 '여자'였다. 설거지하는 것의 비효율성을 보고 발명했단다. 감사합니다, 코크렌 발명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