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멘탈 관리 2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처음에 제일 어려웠던 건, 나 스스로 주부를 '직업'으로 인정하는 일이었다. 스스로부터 '스테이 앳 홈 맘'이 하나의 직업임을 납득해야 남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으니까. 사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실제적으로 돈을 벌어오지 않는 일을 하면서 정신이 건강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가 36개월 때까지 가정보육을 했기에, 그때까지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우울했지만 마음 놓고 우울할 여유도 없었다. 그때는 일시적인 산후우울증이라고 생각했고, 아이가 크면서 점차 나아지리라 기대했기에, 우울함을 그냥 하나의 옵션처럼 일상에 끼워두고 살았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우울감이 세게 왔다. 아이가 기관에 가서 분명 더 여유가 생겨야 할 것 같은데 그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를 기관에 보내놓고 공부도 하고 부업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직장으로 돌아가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이 정체된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블로그였고, 그다음은 운동, 그다음은 영어 공부였다.
블로그는 나의 과잉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우울감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떤 형태든 꾸준한 글쓰기는 우울감 해소에 좋다. 하지만 시급하게 꺼야할 급한 불, 급작스럽게 오는 견디기 힘든 우울을 바로 해결할 때는 운동과 영어 공부가 가장 효과가 컸다.
요즘 나는 주 2회 필라테스를 하고, 시간 날 때마다 실내자전거를 탄다. 매일 30분씩 화상영어를 하고 집안일을 할 때는 EBS 라디오 영어 강좌를 들으며 큰 소리로 따라 한다.
이것저것 시도해 본 결과, 내게는 운동과 영어 공부가 우울감을 빠르게 해소하는 데는 가장 효과가 좋았다. 생리 전 증후군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가사 과중이나 체력 고갈로 오는 우울감은 운동과 영어 공부로 해소할 수 있다. 운동하고 영어 공부하면 더 스트레스받을 것 같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그냥 드라마 보면서 누워있고 싶을 때가 더 많다. 그런데 애써 몸을 일으키고 집안일을 하면서 EBS 라디오를 듣고 따라 말하거나, 아니면 실내자전거를 탄다. 매일 하는 화상영어는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종종 있지만 벌써 7개월째 꾸준히 하고 있다. 그전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금씩이나마 계속 영어 공부를 해왔다.
꾸준히 무언가를, 그것도 건설적인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내 기분을 편안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게 아니요, 영어능숙자가 되기 위해 영어공부를 하는 게 아니고, 나는 진짜 나의 기분을 편안하게 유지하기 위해 이런 일들을 꾸준히 한다.
다른 사람이 전업주부를 무시할 수도 있다. 돈이 최고인 사회에서 돈 말고 다른 걸 선택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리고 그런 무시를 하는 사람이 때론 친한 친구이고, 가족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무시를 당했을 때 나 스스로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기분이 전혀 상하지 않을 수 있다.
가끔 나는 내가 참 부지런하구나 스스로 감탄한다.(아무도 칭찬하지 않을 때 내가 나를 칭찬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물론 휴식을 위해 게을러지는 날도 있지만 나 스스로를 위해 건설적인 몇 가지를 꾸준히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나를 세우는 꾸준함이 없으면 끝없이 몰아치는 가사와 육아 앞에서 쉽게 우울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우울한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우울한 엄마가 되느니 직장일로 바쁜 엄마가 되는 게 낫다.
평소에는 이렇게 기분을 관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며칠이고 매일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줄창 본다. 오롯이 나를 위해서 나의 시간을 한동안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기분이 점차 올라온다. 어느 정도 기분이 올라오고 나면 다시 꾸준히 운동과 영어 공부를 한다.
전업주부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한 핵심 역량은 뛰어난 요리 실력도 가사 능력도 아니고, 스스로 기분을 편안하게 잘 유지하는 능력이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전업주부를 하는 건데, 우울하거나 화가 나 있거나 지치거나 활력 없는 상태로는 좋은 엄마가 되기 힘들다.
만약 이제 막 전업주부라는 직업에 진입한 분이라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기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가장 먼저 개발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에게는 그게 운동과 영어 공부였지만, 아마도 사람마다 방법이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