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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기 전에 집안일을 멈추는 법

도르마무가 된 (마블 영화 덕후) 전업주부

by 김다다 Mar 26. 2025

봄맞이 대청소로 양팔을 잃고 주말 내내 누워 있었다. 팔을 쓸 수 없었다. 내가 팔이 약한 건지 다들 적당히 조절하면서 집안일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만큼 집안일을 하고 나면 꼭 앓는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팔을 잃었어. 두 팔 다 윈터솔져야. (윈터솔져는 마블영화에서 팔 한쪽을 잃는 캐릭터다.) 아프기 전에 집안일을 멈추고 적절하게 조절하는 법, 나는 아직도 터득이 덜 되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대인 도르마무를 결국 이긴다. 계속해서 시간을 되돌려 도르마무를 지치게 해서 이기고 만다. 도르마무는 상대를 물리치고 물리치고 또 물리치지만 계속해서 시간이 반복되고 결국 그 억겁의 반복에 갇힌 도르마무는 '지쳐서' 지고 만다. 전업주부에게 집안일은 바로 그와 같다. 해도 해도 해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일.


일상적인 청소와 빨래, 설거지 외에 이번 봄을 맞아 특별히 한 집안일 몇 가지는 이러하다. 첫 번째, 신발장 청소. 신발장에 있는 신발들을 모두 베란다로 꺼내 햇볕을 쪼이고 말렸다. 신발장을 꼼꼼히 닦아내고 문을 열어 몇 시간 동안 환기를 시켰다. 일광소독을 마친 신발들을 다시 신발장에 넣고, 신발장 탈취제를 새로 넣어 두었다. 두 번째, 창문 청소. 방충망과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오래 묵은 먼지는 힘을 세게 주어 여러 번 박박 닦아내야 닦였다. 그러고 나서 창문청소기로 창문을 청소했다. 세 번째, 베란다 청소. 베란다 바닥에 세제를 섞은 물을 풀어 뿌린 후 불려 두었다가 솔로 문질렀다. 물로 헹군 뒤 창문을 한참 열어 두어 건조시켰다.


그러고 나서 나는 두 팔을 잃고 주말 내내 누워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시급한 일도 아닌데, 기어코 무리를 해서 앓았다. 다들 이 정도는 거뜬히 할 정도로 체력이 좋은 건지, 내가 요령이 없는 건지 궁금하다. 주부라면 다들 이 정도의 중노동(?)은 하면서 살아가는 건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보니 또 개어야 하는 빨래가 산더미다. 으악.


작년 이맘때쯤 대상포진을 앓고 나서 친정엄마에게 좀 내려놓고 쉬란 소리를 들었다. 게으르게 하라고. 이번에도 팔이 아파 앓았다는 소리에 엄마는, 성능 좋은 세제의 힘을 빌려 적당히 하라고 했다. 솔로 문지르고 하는 거, 그런 힘쓰는 거 하지 말라고. 뭐든 적당히 세제에 불렸다가 슬슬 닦아내고 말라고. 솔로 문지른다고 아주 깨끗해지지도 않고 너만 병난다고.


완벽주의인 전업주부는 두 가지 길 중 하나로 간다. 하나는 누가 봐도 뛰어난 살림꾼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골골 대는 병자의 길이다. 모든 일의 성공은 체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체력이 그다지 훌륭한 주부가 아니라면 완벽주의는 얼른 내려놓는 것이 좋다. 나도 한동안 내려놓고, 내려놓았는데, 오랜만에 살짝 선을 넘어 집안일을 했더니 다시 아팠다. 청소하다가 앓게 되는 상황은 정말 기분이 별로다. 슬슬 하는 거. 왜 그게 자꾸 안 될까. 눈앞에 보이면 무리를 해서라도 다 해치우고 싶어진다.


주말 내내 쉬었던 덕분에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참, 여기서 주말 내내 쉬었다는 말은 무리한 가사 노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일상적인 요리와 설거지 등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님을 주의하자. 모두가 다 알면서도 잘 모르는 것 같은 진실을 말하자면, 아이 엄마는 휴일이 없다.) 아직 남은 미미한 통증을 느끼며 오늘도 다시 한번 슬슬 적당히 하자를 되뇌어 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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