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멘탈 관리 1
부부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간 큰코다친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지나치게 부렸다가는 부부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나의 12년 결혼 생활 끝에 얻은 결론은 내가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을수록 우리의 관계가 더욱 편안하다는 것이다.
아이를 출산하고 의지할 데라곤 남편 밖에 없는 상황에 떨어졌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작은 사람 하나를 온전히 키워낼 수가 없다. 작은 사람을 매일매일 살리는 책임이 나에게 주어졌는데, 출산 후 빌빌대는 몸으로 혼자서 그걸 다 해내기엔 어렵다. 도와줄 사람을 고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편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니 좀 치사한 것 같아도 남편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명확하게 요구해야 한다.(예: 싱크대에 있는 우유병 오늘 안에 닦아줘.) 그러나 감정적인 도움까지는 바라지 않는 것이 좋다.(물론 감정적인 도움, 지지, 공감을 해주는 아주 훌륭하신 남편들도 있다는 걸 풍문으로 들었으나, 그 풍문이 내게도 현실이 되는 걸 바라는 건 망상이다.)
출산 직후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아기는 너무 예뻤지만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다. 지금 돌아보면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 약을 타 먹었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싶지만, 어찌어찌 의료적 도움 없이 그 시기를 넘긴 게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미련 떨지 않고 바로 정신과에 가서 약부터 먹을 거다.) 남편 또한 아빠가 된 직후라 정신이 없고, 매일 울고만 있는 아내에게 이미 지쳐있다.
그러다 나는 숨구멍을 찾았다. 주말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두세 편씩 봤다. 영화 사이사이에 끼니를 먹으면서도 보고 끼니를 거르면서도 영화를 여러 편 봤다. 그러다 아이가 좀 커서 약간의 자유시간이 생기고 나서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어차피 영화야 지겹도록 보는 거, 영화를 보고 리뷰를 써서 기록해 두자는 생각이었다. 조금의 수익이 난다면 기분도 좋을 것 같았다. 블로그 시작 일 년 만에 네이버 영화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그 후 일 년 후에는 이달의 블로그와 올해의 블로그로도 선정되었다.
나는 여행이나 나들이 같은 걸로는 스트레스가 완전히 풀리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그런 바깥 활동들이 기분전환에 큰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나의 정신적 에너지는 온전히 정신을 소모하는 방식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나 자신을 파고들어 깊은 우울의 늪을 판다. 사실 나는 오래 우울과 함께 해온 사람으로서, 수이 우울해지지만 수이 그 우울을 벗어날 줄도 안다. 사실 최근에 남편이 몇 달간 꽤 바빠서 밤늦은 퇴근이 많아지고, 그래서 조금씩 나의 육아와 가사 부담이 과중되면서 좀 많이 우울했다.
그러나 이 우울은 절대 남편이 해결하지 못한다. 주부우울증이라고 할만한 이것을, 누군가는 종교에 의지해서, 누군가는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면서, 누군가는 격하게 운동하며 해소하겠지만, 나에게는 영화 보기, 책 읽기, 글쓰기 세 가지가 답이다. 나의 과다한 정신적 에너지를 이런 것들로 풀어내지 않으면 그 에너지는 뾰족한 창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급기야는 남편과 아이에게 향한다. 남편과 아이를 사랑해서, 이들에게 좋은 가족구성원이 되고 싶어서 전업주부를 하는 건데 그게 안 된다면 전업주부를 사직해야 한다. 어디든 나가서 '돈을 버는' 일을 하면서 가족을 창으로 찔러댈 에너지를 풀고 와야 한다. 그러나 나는 전업주부를 계속 하고 싶었다.
남편은 블로그 하는 것을 한동안 탐탁지 않아 했다. 돈도 안 되는 거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고 말하기도 했고, 그럴 거면 요즘 대세인 유튜브를 하라고도 했다. 이러쿵저러쿵 옆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꽤 오래 했고, 어쩔 때는 그 말을 듣고 울컥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만약 블로그를 하지 않았다면 그 에너지로 남편을 전방위적으로 들볶았을 것이다. 나 좀 어떻게 해보라며 남편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 재우고 영화 보고 글 쓸 수 있는 약간이 시간이 주어지만 그저 감사하다. 내가 별 볼 일 없는 글을 끼적이는 동안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 걸 보면 남편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다.
세심한 공감의 말 같은 걸 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우리 남편을 통해 알았다. 우리 남편은 그런 건 못해도 내가 영화를 볼 때, 내가 글을 쓸 때 묵묵히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이런 남편조차 흔치 않다는 걸 안다. 그런데 우리 남편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내가 이걸 못하면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다는 걸, 수차례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정기적으로 미치광이의 칼춤을 보느니 영화를 보고 블로그를 하게 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블로그에 매달렸다. 블로그가 나의 삶의 '닻'이었다. 너무 많은 생각과 불안, 우울 같은 것에 함몰되어 떠내려가는 나의 삶을 잡아주는 닻이었다. 이제 블로그는 내 생활의 일부다. 그리고 이번에는 새로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작가'라는 말이 붙어도 되나 싶을 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만, 글쓰기를 닻으로 삼는 사람이 스스로를 작가라고 불러도 된다면 나는 조금 부끄러워도 '작가'하겠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나의 닻이다'라는 비장한 유언을 나에게 변형해 적용해 본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요즘이라면 꼭 자기만의 방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닻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닻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인 것이 든든하고 좋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거기가 곧 내가 이 생에 닻을 단단히 내리는 장소가 된다. 가장 정적인 활동인 글쓰기를 하는 순간 오히려 나의 생이 생생해진다. 매번 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이다. 매번의 글쓰기가 나에게는 새롭고도 즐겁다. 나에게는 나만의 닻, 글쓰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