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평일 오전은 주부의 휴일

전업주부의 미타임

by 김다다

처음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게 휴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월화수목금 일하고, 토일에는 쉬면 되니까 어려움이 없었다. 평일에 힘들어도 조금만 참으면 주말이 오고, 주말이 아쉬워도 또 며칠 지나면 다시 휴일이 오니까. 직장인에게는 반차도 있고 연차도 있고 월급도 있지만 전업주부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월급이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해도, 휴일만큼은 보장이 되어야 한다. 모든 노동에는 휴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과로하는 사람이었다. 일이 끝날 때까지 와다다다 몰아쳐서 하고, 끝나면 푹 쉬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일단 전업주부의 일은 '끝'이라는 개념이 없다. 집안일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한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여기까지 하면 끝,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에 도무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 초반 몇 년은 과로하다가 몸살이 나면 그제야 일을 쉬곤 했다. 그런 어리석은 경험을 여러 차례하고 나서야 강제로라도 쉬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전업주부의 휴일은 언제인가? 처음에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 즉 직장인처럼 그날을 휴일로 삼아 보았다. 휴일이면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외출을 해서 영화를 여러 편 보거나 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면 꼭 아이가 다치거나, 아니면 하루종일 아이가 제대로 먹거나 쉬지 못해 수이 아파지곤 했다. 남편은 날이 엄청 추운 날 아이에게 얇은 옷을 입혀 나간다거나, 아이의 컨디션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해 쉬어야 하고 먹어야 할 때 챙기지 못하는 게 다반사였다. 게다가 외출하고 돌아온 집은 폭탄 맞은 것처럼 엉망이었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화를 많이 냈다. 월화수목금 열심히 일한 내가 주말에도 못 쉰다는 게 억울해서. 그리고 내가 없으면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게 화가 났다. 나는 아이를 보면서 집안일도 하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데 남편은 아이 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벅차했다. 여러 차례 싸우고 화내다가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을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는 데 시간과 노력을 쓴다면 그 기간동안 아이는 성인이 되고도 남을 거라는 걸. 그래서 내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더불어 평일에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일한 남편이 아이를 주말에 전담해서 본 것도 대단한 거란 걸 안다. 그런데 그걸 '성이 찰 정도' 잘 해내지 못한다고 화내는 것도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주말에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은 한 남편과 아이와 시간을 같이 보낸다. 물론 남편도 이제 아빠가 된 지 여러 해라, 아이와 둘이 놀이공원에 다녀오기도 하는 등 둘이서 시간을 잘 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말 남편을 믿고 남편과 아이 둘이서만 보낼 수 있는 곳이라는 확신이 없는 한, 웬만하면 내가 따라간다. 사실 내 휴식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다. 그러면 과면 전업주부인 나는 대체 언제 쉬느냐? 아이가 등원한 후인 평일 오전에 쉰다.


평일 오전은 나에게 휴일이다. 매주 수요일 오전이면 나는 영화관에 가서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본다. 매주 수요일마다 신작이 개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전에 주 2회 필라테스를 간다. 겨우 이 정도로 휴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쉼이다. 관객이 거의 없는 오전에 영화관에 가서 앉아 있을 때, 필라테스를 마치고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돌아올 때, 나는 내가 '팔자 좋다'는 생각을 한다. 이 정도 팔자 좋음도 없다면 누가 전업주부를 하겠냐 싶기도 하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인 미타임(Me Time)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이건 누구에게 허락받을 필요도 없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전업주부 일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시간이다. '돈도 안 벌면서' 오전에 카페에서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브런치를 먹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안다. 특히 직장 생활을 평생 쉬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엄마들의 브런치를 어떻게 보는지 안다. 그러나 돈을 벌지 않는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다른 엄마들과 브런치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가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브런치를 먹는 엄마들을 보면서 '팔자 좋다'는 비판적인 마음의 소리가 올라온다면, 팔자 좋은 그 엄마들은 주말에도 삼시세끼 가족들의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방법과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주부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일, 충분한 쉼이 되는 행위라면 기어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꼭 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다. 사실 평일 오전에 할 수 있는 쉼의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조금 아쉽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원하는 휴식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녁에만 해야 하는 일, 주말에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영화를 매주 본다는 말에 "요즘 영화값 비싸지 않아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필라테스는 비싼 운동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나도 아주 가끔은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내 취미생활에 쓰는 비용은 정신과 진료비나 병원 입원비보다는 싸다고. 스스로 미타임을 챙기지 못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너지고 나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다시 회복하는 동안 아이와 남편에게 지대한 피해가 간다. 내가 건강해야 우리 가족이 건강하다. 고로 평일 오전은 전업주부의 휴일이라고, 스스로 굳게 마음먹어야 한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5화식기세척기에 의지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