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직원은 보통 세 가지 스케줄로 근무한다. 오픈, 미들, 마감.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이 기피하는 파트가 있었으니, 단연 마감이다. 에스프레소 머신 청소부터 테이블 정리, 음료 만들 때 쓴 모든 기물들과 손님이 드시던 컵 설거지, 최종 시재 점검 등 그 긴 하루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일들.
나도 마감 근무가 제일 싫었다. 첫 번째 이유는 마감하랴, 손님 받으랴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맨 처음 일했던 카페는 밤 11시에 문을 닫았는데 라스트오더 시간이 따로 없었다. 밤 11시까지 손님을 받으며 마감을 하는데, 머신 청소 끝자락에 커피 메뉴 주문이 들어오면.. 그날 칼퇴는 빠이빠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혼자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간다는 책임감 때문. 순조롭게 잘 마무리하고 퇴근해 놓고 불쑥 드는 생각들이 있다. '에어컨 껐나?', '제빙기 문 잘 닫았겠지?', '카페 문은 잘 잠그고 나왔나?'.. 집에 가는 길 버스를 돌려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을 만큼 찜찜해지는 순간. 이렇게 카페 마감은 시간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늘 압박이 있는 포지션이다.
쫄리는 카페 마감 시간처럼,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도 그런 것 같다. 사회적 분위기는 물론 법적으로도 청춘의 영업 종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시기. 부랴부랴 그동안 잘 살아왔는지 자꾸 점검하게 된다. 제시간에 잘 해냈는지, 중간에 빠뜨린 건 없는지 스스로를 자꾸 들여다보면서.
이런 생각 때문에 참 부단히도 스스로를 들들 볶았다. 이 나이쯤엔 얼마는 모아야 한다는데, 누구는 벌써 결혼해서 애가 초등학생이라던데, 누구는 연봉이 얼마라던데.. 아무리 예외는 있고 사람 사는 거 제각각이라지만, 그 기준들이 전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외면하기 쉽지 않았다.
30대 후반의 이단아로서, 이 초조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뜻밖에도 그 해답을 카페 마감에서 찾았다.
바로 칼퇴를 포기하는 것.
조금 허무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정말이다. 칼퇴를 포기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마감 직전 손님이 들어와도 여유 있게 응대할 수 있고, 불 다 끄고 문 잠그고 나왔다가도 제빙기 확인 안 했나? 싶으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 집에 가는 시간이 조금 늦어질 뿐이다.
나이에 대한 초조함도 결국은 사회가 정해놓은 데드라인, 그리고 내 안에 자리 잡은 ‘이쯤이면 돼야 한다’는 기준 때문 아닐까.
현실적으로 꼴찌로 달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를 등수가 아니라 완주에 의미를 둔다면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누군가 정신승리라고 손가락질한다면, 인정. 정신승리 맞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에서 자기 마음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 정신승리도 충분히 전략이다.
조급함을 내려놓으니 마감 직전 들이닥치는 주문과 돌발상황에도 마음이 편하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