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서른아홉도 중반을 지나 마흔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미 백세시대라지만, 지금 내 나이를 마냥 어리게만 봐도 될지는 잘 모르겠다. 청년이라기엔 나이가 많고, 중년이라기엔 아직 이르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다 내려놓고 살기엔 아직 남은 시간과 가능성이 아깝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 인생의 메뉴판을 다시 꾸리고 있다. 단종된 메뉴는 지우고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며 조금 더 ‘나다운 맛’이 나는 인생을 고민 중이다.
한동안 ‘SOLD OUT’ 상태였던 ‘작가’라는 메뉴가 리뉴얼되어 다시 메뉴판에 올라왔다. 그동안은 당장 생계를 위해 클라이언트를 위한 글을 써왔다면, 이제는 브런치 연재와 드라마 공모전을 중심으로 천천히 나만의 작업을 이어가려고 한다. 이제 막 심기 시작한 이야기의 씨앗들이 꼭 거창한 나무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작고 진심 어린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하루 끝에 잠시 쉬어가는 따뜻한 한 잔처럼 닿기를 바라본다.
새롭게 선보이는 신메뉴도 있다. 바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원’이다. 바리스타로 일하며 병행했던 학점은행제를 통해 곧 학위와 자격증을 받게 된다. 오래전 마음 한 편에 담아두었던 가능성, 그 가능성에 손을 내민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낯설지만 새로운 맛을 더해가는 이 과정이 또 어떤 길을 열어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제는 조용히 단종된 메뉴도 있다.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어쩌면 나에게 가장 바쁘고 치열한 메뉴였던 바리스타. 매일 커피를 내리며 사람을 보고, 내 마음을 보고, 인생을 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직업에 대해 생각이 많아질 때쯤. 마침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으면서 이 일을 오래도록 즐겁게 해낼 내 모습을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무리하지 않고 내려놓기로 했다. 맛을 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덜어내는 것도 필요하니까.
지금까지는 삶에 있어 한 가지 메뉴, 한 가지 맛에만 집착했던 것 같다. 맛을 내는 데 있어서도 한 가지 레시피만을 고집해 왔다. 이제는 내 인생의 맛에 조금은 너그러워지려고 한다. 그날그날 내 마음에 맞는 재료를 골라 조합해 보며, 내게 어울리는 다양한 삶의 맛을 찾아가는 연습을 할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다 아는 것 같았던 20대, 그 착각에 속아 뒤늦게 허둥대며 방황했던 30대를 지나 이제 40대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의 삶이 빠르고 강하게 내린 에스프레소 같았다면, 이제는 드립커피처럼 살고 싶다. 천천히 원두를 뜸 들이고,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 내리면서. 천천히 우려낸 깊고 진한 맛뿐만 아니라 향과 풍미까지 즐기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천천히, 정성껏 내려 마시며 살아가보려고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의 문을 연다.
새로운 메뉴로, 새로운 하루를 내리며
서른아홉, 다시 한 번 정성껏 리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