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때문일까? 바리스타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아니, 궁금해한다기보다는 단정 지었다. “아, 그러면 나중에 카페 차리겠네?” 하고. 그 얘기를 들으면 늘 아하하, 웃으며 넘기곤 했다.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과 반론이 맴돌았지만, 꺼내놓자니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생각의 시작은 이거였다. 왜 회사를 그만두면 당연히 창업을 한다고 생각할까? 세상에는 회사원이거나 사장이거나, 둘 중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카페 차릴 계획? 없다.
카페 운영은 무슨, 나는 지금 내 인생 하나 운영하기도 벅차다.
카페 주인이 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면 내 인생에 나는 없었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고, 그게 맞는 줄 알았다. 그 덕분에 인간관계에는 트러블 없이 원만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때는 30대 초반쯤? “뭐 먹고 싶어?”, “무슨 영화 좋아해?”, “어디 갈까?” 같은 애정 어린 질문들이 이상하게 버겁게 느껴졌다. "뭐든 괜찮아", "다 좋아" 하며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친구들의 취향은 줄줄 외우면서, 정작 내 취향은 몰랐다. 다른 사람의 기분에는 민감하면서, 내 기분에는 무뎠다. 그렇게 나는 일에서, 사람 사이에서 점점 나를 잃어갔다. 어쩌면 나와 가장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은 바로 나였는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무지를 방치한 채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 염증은 결국 작가로 일하며 곪아 터지고 말았다. 주관이 없으니 일할 때 그저 예스맨, 호구였다. 내 글에 대한 피드백과 나의 주관 사이에 균형을 맞추지 못해 흔들렸다. 글이 무너지니 나도 ‘못하는 사람’으로 느껴지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이런 것도 모른 채 그저 나는 운이 없다고, 작가는 나랑 안 맞는다고 자기 연민에 빠져 살았던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야 나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부터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드라마, 지금 먹고 싶은 음식 등등. 바리스타 일을 시작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동안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성격의 일을 하며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한다.
이렇게 조금씩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사실 이제야 이러고 있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아주 많이.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나는 비로소 내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나를 지키면서, 또 나 아닌 것들과 조율하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카페 사장님이 아니라 내 인생의 사장님이 되려고 한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