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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VS바리스타, 어떤 커피를 마시겠습니까?

by 김연경

우리 카페 커피를 책임지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직원들 중 가장 연차 높은 선배님이시다. 10년도 넘었다고 했나?


세상엔 불변의 진리가 있다. 바로 사람도 기계도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고장 나기 마련이라는 것. 우리 카페 머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필이면 한창 바쁠 피크 시간에.


“점장님..! 우유 스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한창 따뜻한 라떼가 많이 나가던 한겨울. 아무리 스팀을 해도 우유가 데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갑자기 퍼져버린 머신 때문에 진땀을 빼고 있었다.

“손님 정말정말 죄송한데.. 괜찮으시면 우유 스팀 대신 전자레인지로 데워드려도 될까요..? 아니면 환불 도와드릴게요.”

얼마 전에는 샷이 안 내려와서 아메리카노 대신 더치커피로 나간 전적이 있어서인지, 손님들 반응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다. ‘에휴, 니들이 고생이 많다.’


머신이 자꾸 속을 썩이기 시작하자 본사에 머신 교체를 건의했고, 그동안 고장 사례를 숱하게 보고 받은 덕분인지 바로 승인이 났다. 그런데, 새로운 제안이 곁들여졌다. 바로 ‘자동 머신’도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


기존 방식은 사람이 그라인더로 갈린 원두를 포터필터에 담고 탬핑한 뒤, 머신에 장착해 버튼을 누르는 식이었다. 우유 스티밍을 할 때도 눈으로 직접 우유 상태를 확인해 가면서 피처 각도, 스팀 세기, 스티밍 시간 등을 조절했다. 하지만 자동 머신은 다르다. 아메리카노든 라떼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완제품이 바로 나온다. 뷔페에서 흔히 보던 바로 그 커피 머신을 생각하면 된다. 심지어 가격도 저렴했다. 기존 머신의 반값, 어떤 모델은 숫자 ‘0’이 하나 빠질 만큼 저렴한 것도 있었다.


만약 자동 머신이 들어온다면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손가락으로 버튼 누르기.'

“언니.. 저희 짤리는 거 아니에요?”

직원들이 농담 삼아 이야기했지만, 왠지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결국 ‘자동 머신’으로 교체하는 건 보류되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바리스타'라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AI가 창작도 하는 요즘, 이제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건 놀랍지도 않은 시대다.


‘그러면 자동 머신과 내가 다른 건 뭐지?’


나는 직업은 갈팡질팡했어도, 확고한 직업관은 있다. 바로 ‘내 일에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래서 계속 이 일을 할 거라면 선택해야 했다. 철학을 가진 바리스타가 될 것인지. 또 어떤 철학을 가진 바리스타가 될 것인지.


하지만 바리스타로서의 철학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미각이 뛰어나지도 않고, 평소 요리를 즐기는 편도 아니다. 맛집이나 분위기 좋은 카페도 친구들 따라가는 게 전부다. 나이와 함께 노화되어 가는 소화력은 덤.


반면 작가로 일할 때는 좀 달랐던 것 같다. 하얀 워드 화면을 마주하면 늘 막막하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결국 까만 활자로 채워진 내 글이 영상이라는 결과물로 나왔을 때의 희열이란..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바리스타와 작가를 다시 저울질하고 있었다.


'나 또 탈출각 재는 건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예전의 선택은 현실을 도망치기 위한 핑계였다면, 지금의 고민은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려는 노력이자 시도였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커피가 완성되는 시대, 나는 어떤 선택을 누르는 사람일까.

나는 아직 그 버튼 앞에서 잠시 망설이고 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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