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피크 전쟁 : 적들은 늘 12시에 온다

by 김연경

카페 일을 시작하고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바로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언니, 그거 알아요?”

“뭐요?”

“오늘 비 온대요.”

“으아아악!!”


비 소식이 들려오면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비뿐만 아니라 눈도 마찬가지다. 우리 카페는 회사 안에 있는 사내카페라, 점심시간이 가장 붐비는 시간이다. 그런데 비가 오면 직원들이 점심 식사도, 커피도 모두 구내식당과 우리 카페에서 해결한다. 즉, 평소보다 손님이 두 배는 더 많다는 뜻이다.


‘촥- 촥-’


30대 후반은 손목을 지키고자 보호대까지 착용해 본다. 혹시나 오늘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역시나, 손님들이 우르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주문에 주문표가 뿜어져 나오고, 줄줄이 밀려있는 주문표를 보며 잠시 생각했다.


‘오, 줄넘기도 가능하겠는데?’


그렇게 정신없이 피크타임이 끝나면 바 안은 폐허가 된다. 얼음이 가득하던 제빙기는 텅텅 비어 있고, 휴지통에 골인하지 못한 빈 우유갑들은 전사한 듯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하얗게.. 불태웠어..'

탈탈 털린 나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연신 땀을 닦았다.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이라 여름에는 속옷까지 축축해졌다. 그런 날엔 퇴근 후 집에 가서 아무것도 못하고 씻고 눕기 바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일상에 문득 다른 생각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사실 바리스타 일을 시작한 건 미래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작가로 일할 땐 퇴근해도 퇴근이 아니었다. 머릿속은 언제나 아이템을 떠올리기 바빴고, 쉬려고 보는 TV와 유튜브는 레퍼런스가 된 지 오래였다.


반면 카페 일은 손과 몸만 움직이면 됐다. 퇴근하면 딱 거기까지. 그래서 퇴근 이후 시간을 활용하려 했다. 새로운 것도 배워보고, 개인적으로 글도 써보고.


초반엔 잘 됐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를 학점은행제를 통해 공부했고, 공모전도 지원해 수상까지 했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까?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점점 체력이 달리더니 발등에 원인 모를 혹이 생겼다. 자꾸 다치고, 근육통과 피로가 쌓였다. 병원과는 그저 내외하던 사이였는데, 어느새 친구보다 의사 선생님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됐다. 결국 출퇴근 외의 시간은 전부 ‘회복’에 쓰였다.


씻고 누우면 어느새 또 내일. 청소할 힘도 없어 집은 점점 어질러졌고, 내 마음도 그랬다.

그렇게 내 하루에는 점점 카페만 남고 나는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흐릿함 속에서, 자꾸 이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게 아닌데.’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keyword
이전 12화인생의 ‘손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