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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손맛’

by 김연경


“다들 한 번씩 커피 좀 내려봐 주실래요?”

어느 날 점장님께서 직원들에게 말했다. 커피 맛이 일정하지 않다는 피드백이 들어와 테스트를 해야 한다는 것.

“같은 원두에 같은 기계로 내리는데 그럴 수 있어요? 원두 때문 아닌가?”

그라인더도 같고, 탬핑 머신도 같고, 레시피도 똑같은데 사람 따라 커피맛이 달라진다고? 원두야 로스팅이나 온도, 습도 때문에 맛이 쉽게 달라질 수 있지만.

직원들이 내린 에스프레소를 하나씩 맛본 점장님이 말했다.

“음.. 다르네요.”


카페에서 일하면서 신기했던 건, 같은 재료와 같은 레시피로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음료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음료에 들어가는 재료 양에 미묘한 오차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정도의 오차로 음료 맛이 획기적으로 달라지진 않는다.


결국엔 ‘손맛’이라는 거였다.


그때 알았다. ‘손맛’은 엄마나 할머니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손에 묻은 세월과 감각, 마음이 더해져 레시피에 없는 어떤 맛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을.


사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처럼 인생도 산수와 달리 1과 1을 더해도 2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나는 꽤 일찍 알게 되었다. 대학 입시도, 취업도, 수많은 시도들도 언제나 나의 계획과 노력과는 다른 길로 흘러갔다.


열심히만 하면, 노력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냐고 묻자 세상은 말했다.

"응. 아니야~ 돌아가~"


그래서 언제나 자신 있게 말하고 다녔다. “어차피 계획해도 계획대로 안 돼.” 그 말이 얼마나 비참한 선언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한 친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하기 전까지는.


“왜? 난 그래도 나름 계획한 대로 잘 살고 있어!”


그 친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를 하긴 했지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세 개의 별이 반짝이는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20대 후반쯤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다. 그 친구의 삶은 마치 정석과 다름없는, 레시피에 맞게 제대로 나온 아주 맛깔난 인생이었다.


내 인생은 뭐가 문제였을까. 레시피였을까? 아니면.. 똥손?

맛없는 음료야 와르르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생은? 맛없다고 버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손을 바꿔야 했다. 남의 레시피를 따라 하기보다는 나만의 속도, 나만의 감각, 나만의 마음으로. 내 입맛에 맞을 때까지.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인생의 메뉴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누구의 삶이 정석인지 굳이 따지지 않는 분위기, 그게 참 고맙다. 만약 내가 더 일찍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맛을 보며 내 인생을 만들어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에 모든 게 착착 계획한 대로 풀렸다면, 나는 과연 이렇게 세상의 다양한 맛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실패가 나를 망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실패들이 나만의 손맛을 길러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스테디셀러 메뉴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입맛에는 딱 맞는 스페셜 메뉴가 될 수 있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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