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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by 김연경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하루지만, 몇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새로운 일상이 있었으니 바로 ‘파트타이머 채용’이었다.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함께 일하지만, 하루 만에 관두는 친구도 있고, 면접만 보고 연락 끊기는 친구도 허다해서 채용을 꽤 자주 하는 느낌이 든다.


이력서를 넘기다 보면, 문득 ‘역시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사연을 가지고 사는구나’ 실감이 난다. 이 카페에서 일하려는 이유도 다양하다.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 배우를 꿈꾸며, 혹은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채용 기준도 작가로 일할 때 후배 작가나 아나운서를 뽑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때는 전공이나 경력 위주로 봤다면 카페 파트타이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첫인상이다. (두둥)


자칭 ‘쎄믈리에’인 점장님의 촉으로 파트타이머를 뽑는다. 어찌 보면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사실 꽤 편견 없는 기준이기도 했다. 경력이 전무해도 의지가 있다면 기회를 주고 싶어 하시고,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으셨다. 내가 이 나이에 카페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내 인상, 꽤 괜찮았나 보다. 엣헴)


어느 회사나 그렇듯,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을 때 서로 손발을 맞추는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휘뚜루마뚜루가 잘 안 되는 나에게는 일하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 것부터 일단 스트레스였는데.. 착착 쌓아놓은 나만의 루틴과 방식을 간혹 선을 넘어 와르르 무너뜨리는 사람이 있다. 그땐 내 억장과 인내심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거다.


제일 일하기 힘들었던 파트타이머는 나보다 5살 많은 주부였다. (지금부터 그분을 ‘언니'라고 부르겠다.) 전에 50대 주부와도 일한 적이 있는데, 야무진 살림꾼에 타고난 밝은 에너지로 매우 기분 좋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이 언니에게도 은연중에 그런 모습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분은 ‘산만함’의 표본이었다. 이 일 하다가 저 일이 눈에 보이면 다 놓고 뛰쳐나가는..


한 손님이 언니에게 매장에서 드시다 남은 음료를 포장해 달라고 오셨다. 남은 음료를 담아드리고 있는데, 다른 직원이 설거지를 하려고 개수대에 갔다. 그랬더니

“어! 설거지 제가 할게요!”

하고 그 직원을 밀어내며 고무장갑을 막 끼기 시작하는 거다.

손님둥절.. 음료둥절.. 나는 동공지진.. 아마도 이 언니는 본인의 주 업무가 설거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테이크아웃 컵에 담기다 말고 덩그러니 남겨진 음료를 본 손님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고, 당황한 손님을 챙겨야 하는 건 내 몫이었다.


언니는 다행히 3달 정도 일하고 그만두셨다. 언니가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글을 쓰지 못했을 테지..


‘이상하다. 왜 이렇게 힘이 들까?’

프리랜서로 일한 시절도 있어서 나름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겪어봤다 생각했는데..

곰곰이 떠올려보니, 그동안 내가 일한 환경은 대체로 분업이 명확하고 경계가 분명한 환경이었다. 누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 선이 그어져 있었고, 그 선 안에서만 각자 책임을 다하면 됐다. 그 선이 있었기에 충돌도 적고, 예측 가능한 하루가 가능했다.


그런데 카페는 다르다. 경력도 나이도, 성격도 업무 스타일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선 없이 뒤엉켜 일해야 한다. 나는 그게 어려웠던 거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그동안은 일하다가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하루이틀 만에 그만두는 일이 허다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나.’ 하면서. 그땐 그런 경험이 나를 지키는 일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스스로 나를 지킬 수 있는 굳은살 만들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사람과 일하는 법보다, 안 맞는 사람과도 버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적당히 선을 지켜주고, 또 필요할 땐 넘어가고 받아주는 방법을.


그래서일까.

여러 사람과 어울려 일하는 법,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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