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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할래요, 나잇값

by 김연경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나를 ‘언니’라고 불러준다. ‘불러준다’라고 한 건, 나이차가 꽤 나기 때문이다. 막내는 98년생, 나랑 11살 차이. 띠동갑에서 한 살 빠졌다. 알바 친구는 무려 2003년생. 세상에, 이 친구가 응애응애할 때 나는 이미 교복 입은 고등학생이었다. 하긴, 요즘은 2006년생이 대학생이라지? 나는 그 해에 대학교 들어갔는데.. 허허.


그리고 점장님은 나보다 6살 어리다. 이 정도면 ‘언니’ 해도 될 나이 차이지만, 이 분은 나의 상사이지 않은가. 오히려 본인을 낮추며 먼저 언니라고 불러주셔서 감사했다. 나에게 말도 편하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건 한사코 거절했다. 저는 신입일 뿐인 걸요.


사실 겉으로는 “신입이에요”, “신입이니까”, “신입이 감히..” 하며 '암 것도 몰라용'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신입이지만 나이가 많으니 처음이어도 다 잘하려고 했고, 동료들이 위기에 처한다면 내가 짜잔! 하고 나타나 해결사처럼 뚝딱뚝딱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위기에 빠진 주인공은 나야 나!’였달까. 처음 하는 육체노동에 나잇값이 다 뭐냐. 손에 힘이 빠져서 자꾸 컵을 놓치고 와르르 음료 쏟기 일쑤. 다리는 천근만근. 허리는 또 왜 이렇게 아픈지. 한가할 때면 구석에 쪼그려 앉아, 땀과 눈물로 젖은 마스크를 닦아내기 바빴다.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이를 지우고 ‘진짜 동료’가 되고 싶었다. 내 나이 때문에 일을 하는데 지장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나는 머릿속에 ‘꼰대 방지 필터’를 장착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잣대를 들이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했고, 그 엄격한 틈을 통과해야만 나의 말과 행동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의 10%만 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들도 ‘내가 뭐라고 지적을?’,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며 흐린 눈으로 넘겼다.


동료들과 즐겁게 지냈지만, 그 안에서의 노력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나이 먹고 이게 무슨 짓이냐 싶어 서럽기도 하고, 세대 차이로 대화에 브레이크가 걸릴 때면 같은 시대를 공유한 동년배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일이니 내가 감당해야지 생각하며 버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실은 동료들이 아니라, 내가 동료들을 불편해하고 있었다는 걸. ‘배려’라고 여겼던 내 행동들이 사실은 넘어오기 어려운 경계선을 만들었고, 오히려 나의 서툰 어른 역할을 때로는 어린 동료들이 배려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나잇값’이라는 것은 꼭 연륜으로 뭐든지 잘 해내고, 어려움에 처한 동료를 척척 도와주는 것으로 치르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먼저 웃고,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정도? 그리고 가끔은 능청스럽게 “뭔데! 뭔데! 나도 껴줘~” 할 수 있는 여유. 그 정도가 요즘 시대의 ‘센스 있는 나잇값’ 아닐까.


그래서 한번 묻고 싶어진다.

당신의 나잇값은 얼마인가요?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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