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카페에는 ‘라떼청년’이라고 불리는 손님이 있다. 오후 3시쯤 오시면 늘 아이스라떼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마침 피부도 엄청 하야신 데다가, 음료를 받아가실 때마다 상냥하게 “감사합니다.” 인사해주시는데, 천사 같은 그 모습에, 새하얀 우유를 닮은 ‘라떼청년’ 이라는 별명은 더 찰떡이었다. 그분이 카페에 들어오시면 나와 직원들은 “라떼청년이다..!” 하며 수군거렸다.
어느 날과 다름없던 오후 3시쯤, 라떼청년이 카페에 들어와 익숙하게 키오스크를 조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아이스라떼를 만들기 시작했다. 샷을 내리고, 컵에 얼음을 담았다. 보통은 그 정도 해놓으면 라떼청년의 주문표가 들어오는데, 그날은 달랐다. 아직 라떼청년의 주문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라떼 청년! 무슨 일이죠?”라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 그냥 그날따라 내 손이 빨랐나 보다 하면서 미리 아이스라떼를 완성했다.
음료를 완성하고 여유롭게 라떼 청년의 주문표를 기다렸다. 그런데...
“앗..!”
방금 들어온 주문표를 보고, 또 한 번 더 봐야 했다. 아이스 카페라떼가 아닌 이번 시즌 신메뉴가 적혀있던 것이었다..!! 라떼청년의 주문이 아닌가? 하고 키오스크 쪽을 바라보았지만,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은 라떼청년뿐이었다. 라떼청년의 주문이 분명했다. 라떼청년.. 이러기예요? 오늘은 새로운 게 먹고 싶었군요..
원망할 틈도 없이 (사실 원망할 이유도 없다) 부랴부랴 메뉴를 만들어 라떼청년의 주문 번호를 호출했다. 메뉴는 바뀌었지만, 라떼청년의 “감사합니다” 상냥한 인사는 변함없었다.
카페에서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으레 “나 신메뉴 도전해 보려고!”라고 비장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안 먹던 메뉴를 먹는 게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야기하지도 않고, 내 인생을 뒤흔들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매일 아메리카노 먹던 친구가 새로운 메뉴를 골랐을 때 한 번쯤은 ‘엥?’ 하게 되는 것을 보면, 또 거기에 ‘도전’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익숙한 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게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한가보다.
익숙했던 작가를 그만두고 바리스타라는 신메뉴를 선택한 것도 그렇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약 10년의 커리어를 내려놓은 이 도전은, 신메뉴 도전과 달리 금전적 손실을 야기할 만한, 내 인생을 뒤흔들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작가를 떠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떠나려고 하면 기회가 들어오고, 떠났는데도 돌아가게 되는 것을 보고 '혹시 작가가 운명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나는 가보지 않은 길에 뛰어드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익숙함은 놓기 싫고, 변화는 원했다. 아이러니한 욕심이었다.
친구들에게 나의 새로운 행보를 수줍게 밝혔을 때, 그들의 반응 또한 ‘엥?’ 정도가 아니었다.
“에엥? 바리스타아아??’ 에에엥??!”
뭔 일이 나긴 난 것 같았다.
사이렌마냥 엥엥 울리는 친구들을 보니.
인생에 새로운 맛을 느끼고 싶다면 새로운 맛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바꿔도, 씁쓸한 맛이 싫어 시럽을 왕창 넣어도, 결국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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