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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 알바하는 공주님

by 김연경

카페에서 일한 지 한 달쯤 됐을 무렵이었다. 우리 엄마 또래쯤 되어 보이는, 인자한 인상의 손님이 웃으며 말했다.

“공주~ 따뜻한 물 좀 줄래요?”


공주..?

날 공주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우리 엄마뿐인데!


약 10년 동안 ‘작가님’으로 불리다가 갑자기 ‘공주’라니.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한테 물어봤다.

“근데 저 손님, 방금 저 뭐라고 부른 거예요?”

“아.. 공주요. 자주 오는 손님인데, 우리한테 공주라고 불러요.”

그렇다. 난 '카페 공주'가 된 것이다. 아마도 우리를 딸같이 느끼신 모양이다. 게다가 모자에 마스크, 앞치마까지 하고 있으니 내가 몇 살인지 전혀 감이 안 오셨을 거다. 그래 뭐, 서른아홉 살도 공주일 수 있지. 살짝 심장이 오그라들었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었으니 괜찮았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손님이 또 공주들에게 뜨거운 물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을 건네셨다.

“공주는 일한 지 얼마 안 됐죠? 방학이라 알바하러 왔어요?”


방학이요? 알바요?!

우리를 직장인이라고 본다면 나올 수 없는 단어들이었다. 혹시 내가 동안인가..?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나는 안다. 그건 아니다. (슬픔) 이건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분은 그냥,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이 ‘직장인’ 일 수 있다는 것을 아예 상상조차 못 한 거다. 그 손님의 연세때문만은 아니다. 내 친구들조차 내가 정규직으로 입사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즘 카페 알바 잘하고 있어?’라고 안부를 물으니까.


바리스타가 되고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던 순간이었다. 그들의 말을 흘려듣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게 된 건, 어쩌면 나도 카페에서 일하는 게 떳떳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가 보였다.


나는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회사원으로 일했을 때와 똑같이 하루 8시간, 평일 5일 근무하고 월급을 받는다. 4대 보험과 명절 상여금은 기본이고, 근로자의 날에도 예외 없이 쉬었다. 달라진 건 사무실 대신 카페에, 컴퓨터 대신 머신 앞에 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앞에 있어야만 ‘직장인’이라고 여긴다. 이런 고정관념이 우리를, 그리고 우리 사회를 꽤 피곤하게 만든다. 그건 법도 아닌데, 왜 다들 그 법을 지키느라 애쓸까?


그래도 아주 조금은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무실을 떠나 ‘손노동’을 업으로 삼는 2030 세대들의 소식이 종종 들려오기 때문이다.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그 다양함을 존중하고 인정할수록 우린 더 나답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관대해질 때, 나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니까.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오면

나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손님, 공주가 내린 커피 어때용?”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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