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구두를 신은 앳된 얼굴들

by 김연경

어린 시절 아빠의 검은 구두가 생각이 난다.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신발장에 자리하고 있던 검은 구두. 아빠는 용돈을 줄 테니 구두를 깨끗하게 닦아놓으라고 하시곤 했다. 그러면 나는 내 팔만한 크기의 아빠 구두에 고사리 같은 손을 넣고, 구둣솔에 검은 구두약을 묻혀 벅벅 열심히 닦았다. 가끔 구둣솔이 타깃을 벗어나 내 손등을 스치면, 그 자리엔 검은 흔적이 남았다. 아직도 그 뻣뻣한 구둣솔의 촉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런 기억 때문일까. 나에게 검은 구두는 직장인, 나아가 아빠 같은 ‘어른’의 상징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오래된 ‘어른’의 이미지가 단번에 최신 버전으로 바뀐 순간이 있었다.


저녁 5시 30분에 카페 마감을 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줄을 섰다. 카페가 오피스 상권에 위치한 만큼 버스 정류장에는 퇴근 후 버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검은 정장, 단정하게 맨 넥타이와 각진 서류가방, 그리고.. 검은 구두.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차림이었다. 그래, 아무리 세월이 달라졌어도 이게 직장인의 정석이지.


그런데 무심코 봤던 그들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직장인, 소위 ‘어른’의 정석인 차림새로 서있는 그들의 얼굴이 너무나도 어리고 앳되어 보였던 것이다. 나보다 족히 열 살 정도는 어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능숙하게 동료들과 적당히 친근한 선을 지키며 대화를 나누거나, 퇴근 후 걸려온 업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봤던, ‘어른’의 모습이었다.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러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들이 어른이 되었을까. ‘나는 06학번인데 이제 06년생이 대학생이다’라는 말보다, 어른 역할을 하고 있던 버스 정류장의 그 앳된 얼굴들이 흘러온 세월과 내 나이를 실감하게 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때는 저쪽 세계에 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땐 나도 어른이었을까.


검은 구두 대신 커피 가루 묻은 검은 운동화,

각진 서류가방 대신 키링 달린 크로스백,

정갈한 넥타이 대신 캐주얼한 모자를 쓰고 있는 나도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정확히는 요즘의 내가 ‘어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카페에 오는 손님들의 얼굴들을 유심히 보게 됐다. 카페에 나보다 어린 손님들이 많이 오는 게 아니라, 이제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젊은 축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

그들은 회사로 돌아가고 나는 카페에 남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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