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그랬다. 나이가 들면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찍어먹지 않아도 구분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난 반대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수록 굳이 찍어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설령 그게 내 오감과 촉, 그리고 풀풀 풍기는 냄새가 ‘이거 똥이야!’라고 힘껏 외치고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출근한 지 하루 만에, 일주일 만에 토낀 회사가 몇 군데던가. 면접 잘 봐놓고 쎄한 느낌에 입사를 고사한 회사도 수두룩. 이유는 단 하나, 촉이 왔다. ‘여기서 일하면 개고생 하겠구나.’
느낌 좋은 회사도 막상 들어가면 고충이 있는데, 벌써부터 쎄하면 일 안 해봐도 뻔하다는 것이 나름의 내 철학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 카페에서는 다른 결론을 냈다.
들이받기로 한 것이다. 매니저를.
말이 안 통한다면, 그때 뒤도 안 돌아보고 관두리라!
‘뭐라고 얘기하지..’, ‘어떻게 운을 떼지..’ 전날 밤, 챗지피티에게 자문을 구하며 어떤 말을 어떻게 할지 머리에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괜히 비장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매니저와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운을 뗐다. 시선은 갈 곳을 잃어 허공을 헤매는 채로.
“매니저님. 오늘 저 퇴근하고 잠시 토크토크 좀 하시죠.”
..토크토크..?
아니, 준비도 안 한 귀여운 단어가 여기서 왜 나오냐고..! 난 지금 심각하다고!!
하지만 매니저는 토크토크라는 망충한(?) 단어 뒤에 숨겨진 나의 결의를 단번에 눈치챘는지, 바로 ‘엇?’ 하더니 물었다.
“대략 어떤 주제의 토크인지 힌트를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피크 때 서로 답답한 상황인 거 같은데, 매니저님 어떤 점이 답답하신 건지 토크토크를 나눠보고 싶습니당.”
그놈의 토크토크가 또..! 말투는 또 왜 이 모양인가.
하지만 진짜 황당한 건 매니저의 대답이었다.
“...딱히..?”
뭐어..? 딱히이~?
나는 어이가 없어 “에에..!?!”라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딱히 답답한 거 없는 사람이 그렇게 승질을 내나요..? 쥐 잡듯이 사람을 잡나요..!!’라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한 채.
“..그래도 한번 이야기해 보시죠.” 하고서 나는 피크 준비에 들어가고, 매니저는 매장 유리창을 닦으러 나갔다. 그렇게 약 10분의 시간이 지나고.. 창문을 닦고 돌아온 매니저가 운을 뗐다.
“창문 닦으면서 생각을 해봤는데요.”
마침 매장은 평소보다 무척 한가했다. 매장의 조명.. 온도.. 습도.. 모든 것이 우리의 ‘토크토크’를 위해 세팅된 느낌이었다.
대략 요약하자면 이랬다. 매니저는 피크 때 나와 여사님의 역할 분담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바쁜데 인원은 적으니까, 내 파트라도 여사님께 부탁할 건 부탁해야 주문이 밀리지 않는다는 것.
이에 대한 내 입장은 이랬다. 별다른 지시가 없다 보니, 그냥 내가 그동안 해온 방식으로 하다가 이 카페 시스템과 부딪히고 있고, 일한 지 2주 정도밖에 안 돼서 그 여사님이 바쁜지 한가한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
매니저는 대답했다.
“네. 앞으로는 제가 정리해 드릴게요.”
생각보다 수월하게 대화가 정리됐다. 그리고 나는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리고.. 저는 궁금한 거 물어보고, 서로 소통하면서 일하고 시푼뎅.. 피크 때 그런 분위기가 아니어가지궁..”
들이받겠다던 각오에 비해 모양새는 꽤나 쭈굴쭈굴 노간지였고, 이에 대해 매니저도 딱히 대답을 해주진 않았다. 그래도 할 말은 다 했고, 나름 대화가 됐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너 왜 나한테 승질내니!?”라는 말은 안 했지만, 매니저는 내 토크토크의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날 이후 피크 때 매니저의 고성은 자취를 감췄다. 고성이 오가던 자리에 개 큰 한숨이 자리 잡긴 했지만.
그리고 며칠간 매니저의 변명을 들어야 했다.
“저 진짜 이런 사람이 아닌데.. 여기 와서 화가 많아졌어요.”
“지인들은 저한테 착해서 알바들한테 화도 못 내겠다고 해요.”
그리고 본인의 텐션이나 표정이 안 좋았다 싶으면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오늘 아침에 진상 손님 때문에 표정이 안 좋았을 수도 있어요.”
그 변명들이 가끔은 뜬금없고 맥락도 없었지만, 이상하기보다는 귀여웠다.
그래요.
먹고살기 힘들죠.
우리 모두 그렇죠.
그닥 멋있진 않았지만, 그날의 토크토크는 꽤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