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쓰레기'다

우리는 제때 해야 할 일이 있다

by 김단한

걷기 힘든데도 걸어야 할 땐 도처에 널린 쓰레기를 목표로 두고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길거리에 널린 쓰레기는 많았고, 나는 감사하게도 거기까지 잘 걸었고, 그것을 주워 버리기 위한 여정으로써 또다시 걸을 수 있었다. 쓰레기는 쓰레기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기억 저편의 어느 궤도를 돌고 있던 뭔가를 낚아 올리는 것에도 충실한 역할을 해냈다. 덕분에 나는 지나간 것과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하며 걸었다.


쓰레기라는 단어를 언제 사용할까. 나는 일상생활에서 내가 쓰레기라는 단어를 언제 쓰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생소한 공간에 갔을 때, 버려야 할 것이 있는데 도무지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쓰레기 어디다 버려요?" 말을 뱉는다. 나를 두고 뻔뻔하게 바람을 피운 작자를 앞에 두고, "이 쓰레기 새끼야." 한다. 운동을 하지 않고, 제때 먹을 것을 먹지 않아 쉽게 붓고 약한 나의 몸을 두고 "나는 쓰레기야" 하기도 한다. 쓰레기는 쓰레기 그 자체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갑자기 이 말을 쓰고 싶다. 한국말은 참 대단하다. 대~단하다가 아니라 대단하다.


쓰레기처럼 살지 말자.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쓰레기처럼 사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쓰레기처럼 산다는 건 숭고한 삶일 수도 있는데. 각종 노고를 전부 거치고, 장렬히 전사했다가 다시 태어나거나 아니면 아예 소멸하는 멋진 존재일 수도 있는데. 나는 요즘 내가 너무 인간 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사실, 내가 인간인 이상 다른 무언가적인 생각은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영영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기도 한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싶지는 않고, 근데 궁금하고.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쓰레기처럼 살지 말자, 라는 생각은 내가 한동안 우울감에 빠졌을 때 머릿속을 동동 떠다녔다. 그때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건강을 돌보지 않고, 무표정으로 세상을 살았으며, 그냥 무(無)였다. 내면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니, 마음에서 쿰쿰한 냄새가 나고 외면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각하지 못하는 새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무섭지만, 자각을 하면서도 그런 일을 막지 못하는 것은 더 무섭다. 나는 내가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으면서도 무언가를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두가 잠든 새벽에, 굳게 닫은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오고, 그 달빛이 나의 방을 어렴풋이 비추며 문고리를 반짝이게 만들 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는 쓰레기처럼 살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쓰레기처럼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식으로 풀어보면, 냄새나는 삶을 살지 말자, 깨끗하게 살자, 바닥에 나뒹굴지 말자,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자 정도가 될까.


아무튼, 반 쓰레기처럼 살았을 땐 많은 생각을 했다. 주로 과거에 집착하는 생각이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돌리게 된다면, 조금 더 생을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겪게 될 무지막지한 일을 교묘하게 피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해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조금 더 빨리 성공의 궤도에 들어서서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가족에게 엄청난 보탬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친구들에게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바로 겁이 따라붙었다. 겁은 나보다 걸음이 빠르다. 겁에 잡히면 마음의 심해에 있던 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것은 천장을 덮거나,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에서 슬며시 나타난다. 그럼, 그날은 온전히 자지 못하고 매번 그런 일을 반복하며 '쓰레기'에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다.


쓰레기처럼 살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난 다음에는 겁 없이 겁과 함께 걷는다. 나는 내가 겁을 영원히 떨칠 수 없고,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나 어떠한 열등감과 평생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을 느낀다. 받아들인다.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허망한 것이기 때문에 매일 하며 산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 순간, 절대 변치 말자는 순간이 찰나의 순간 흩어지는 것을 몇 번 목격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내가 믿는 누군가의 모습이 오랫동안 보존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나 역시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만큼 따라주지 않는 것을 느끼고 나니, 슬픔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정해진 고통이라는 것은 분명히 정해져 있고 우리는 고스란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알고 나니, 더없이 가볍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을 '쓰레기'라 칭해보지 않았을까. 쿰쿰하며 갖가지의 냄새가 풍기는 쓰레기장 같은 삶을 묵묵히 걸어온 적이 있지 않았을까.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여있는 갖가지의 쓰레기는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몸집을 불려 가는 마음 쓰레기 산을 보고 있자면 늘 마음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중요한 약속을 새까맣게 잊은 것 같은 느낌이나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걸 모두 뒷전으로 두고 엉뚱한 여유를 부리는 것 같은 조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약속을 까먹거나 무작정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그랬다. 이렇기만 해도 괜찮나, 진짜. 이런 말들이 속절없이 굴러 나오곤 했다.


어린 시절의 나, 여덟 살의 나, 열아홉의 나, 성인이 된 나. 이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처럼 쌓였다. 쓰레기를 훑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나'들은 나의 몸 곳곳에 매달려 그럴듯한 위로를 바랐다. 나는 '나'들에게 엉성한 위로를 던져보지만, 배부르게 위로를 받는 '나'는 아무도 없다. 위로에, 사과에, '나'는 늘 허기질 뿐이다.


내 안의 쓰레기를 잘 소거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 제일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쓰레기가 잔뜩 쌓인 바닥은 캄캄하고, 흐리며, 어디에 구멍이 뚫려 있기도 하다. 나는 가끔 쓰레기가 잔뜩 쌓인 마음의 한구석을 바라본다. 무엇을 원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의무적으로 나를 살피는 것이다. 나를 살피는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


마음에 쌓여있는 쓰레기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쌓여있는 것을 다시 흐트러지게 만들어 그것을 샅샅이 확인하는 일은 우리에게 그리 나쁘지 않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함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을 들여다보며 살아야 한다.


나를 잘 돌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남의 마음을 신경 쓰느라 나의 마음을 뒷전으로 두고 모른 척한다. 제때 위로받지 못하면 언제나 쌓인 채로 살게 된다.


우리 모두는 제때 밥을 먹어야 하고, 제때 사랑을 해야 하고, 제때 잘못을 고해야 하고, 제때 마음에 품은 이야기를 꺼내 놓아야 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우리는 자주 그것을 놓치고, 심지어 그것이 왔는 줄도 모르고 산다. 늘 후회를 일삼으며. 이 생각은 분명히 이걸 읽고 있는 당신도 해왔던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잊는다. 매일 잊으며 산다. 나보다는 남을 더 위로하다가 아차, 하고는 때늦은 위로를 나에게 건네는 것도 마찬가지다. 위로가 늦어지면 속은 점점 곪고, 마음의 세계엔 이름 모를 쓰레기들이 잔뜩 쌓이겠지. 새삼 놀라울 것도 없을 것이다.


반복하는 삶. 그럼에도 사는 삶.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같은 삶.


정말이지,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KakaoTalk_20210722_210142520_01.jpg 완벽한 인간은 없다지만, 적어도 쓰레기는 되는 것은 피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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