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지금쯤이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지

고추와 참외

by 김단한

나는 ‘조용해서 보면 꼭 사고를 치는 아이’에 속했다.


애가 하도 조용해서 대체 뭘 하는가 싶어 슬쩍 들여다보면, 양반다리를 한 채 머리에 빨래통을 뒤집어쓰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좋게 말해 자기만의 세계지 대체 뭘 하는지 봐도 모르겠는 행동)하고 있거나, 신발장에 있던 엄마 구두를 모조리 꺼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인물과 장사 놀이를 하고 있더랬다. 걷지 못하고 기어 다녔을 땐, 잠시 열어놓은 문 사이로 빠져나가 복도를 전속력으로 기어가고 있는 걸 겨우 잡은 적도 있단다.


선생님이 집으로 직접 찾아오는 학습지 서비스를 진행했을 땐, 매일 천하태평 노는 것 같아도 학습지를 미루는 법은 없길래 기특하게 여겼는데 어느 날 하도 조용해서 방문을 열어 보니 학습지 제일 뒷장에 붙은 답지를 요리조리 보며 맹렬히 답만 뺏기고 있었고, 아직 갓난아기인 동생을 들쳐 안고 세상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아파트 꼭대기 층에 올라가 마치 라이온 킹의 한 장면처럼 동생을 들어 올려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있댔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창밖을 보며 아침인 줄 알고 학교 다녀오겠다면서 책가방을 들고 뛰어나가다가 붙잡힌 적도 있다고 했다. 또,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도와주다 내가 엄마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어른들은 나에게 '커서 뭐 되려고'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엄마도 나에게 가끔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는 달랐다. 조롱조가 없었다. 비꼬는 것도 없었다. 엄마는 정직한 어투로 말했다. 너는 뭐가 되었든, 뭐든 잘하고 있을 거라고. 정말 기분 좋은 주문이었다.


나는 나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상상을 했다. 연극영화과를 다녔을 땐 그 착각이 한층 더 심해졌다. 나는 무조건 무언가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 무언가가 명확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시시한 것은 아닌 뭔가 특별한 것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는 갑자기 어느 날 스타가 되어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연말을 쓸쓸하게 보내면서도 이십 대 후반의 연말에는 어느 시상식이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내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사실,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말이다. 노력은 했다.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타지에서 고생했고, 먹을 것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며 일을 했고, 돈을 벌었고, 그러면서 꿈을 이루기 위한 반복적인 행위를 오랫동안 했다. 그런데 잘 안되었다. 세상에는 꿈을 향한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이들이 많다. 셀 수없이 많다. 뭐, 꼭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한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온전히 나의 탓만은 하고 싶지 않아서 탓을 그쪽으로 슬쩍 밀어 본다.


해마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무언가를 하고 있기는 했는데, 뭘 하는지 몰랐다. 내가 뭘 하는지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몰랐다. 쉬거나 놀지는 않았는데, 계속 무언가를 했는데, 결과가 남겨지지 않으니 나는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되곤 했다. 나는 자꾸 넘어졌다. 이젠 나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랬다. 나는 내 발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살다 보면, 내 발에 걸려 넘어질 때가 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말이다. 걷는 행위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왼발 다음에 오른발, 오른발 다음엔 다시 왼발을 내밀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니까. 왼발 다음에 왼발을 놓아도, 오른발 다음에 오른발을 놓아도 약간 엉성할지언정 앞으로 나아갈 순 있다.


이런 단순한 공식이 한순간 어렵게 느껴진 걸까.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었다. 발이 아니라 발을 무겁게 만든 ‘무엇’에 의하여 나는 넘어졌다. ‘무엇’엔 수많은 다양한 것을 집어넣을 수 있겠다. 미래에 관한 막연한 걱정, 가족에 관한 걱정, 인간관계에 관한 걱정, 나에 대한 걱정, 나로 인한 걱정,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을 걱정하는 걱정…….


걱정은 걱정을 낳는다. 걱정은 서로 엉켜 그 크기를 키우는 습성이 있다. 그것은 매우 어둡고 무겁다. 그래서 자꾸만 자꾸만 마음에 무게를 더해 우리의 몸을 늘어지게 한다. 나는 계속해서 몸집을 키우는 걱정을 양쪽 발목에 모래주머니처럼 든든히 차고 거리를 걷곤 했다. 나의 걸음엔 불같은 화도 실려있고, 축축한 눈물도 묻어 있었다. 걸을수록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면 무척이나 좋겠다만, 대부분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그날은, 평소보다 오래 걸었다. 무거운 발을 이끌고 정처 없이 걸었다.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찾는 연못가를 한참 돌다 매일 커피를 사 마시던 카페를 본체만체 지나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오르막길은 가파르고 높았다. 다른 길로 돌아 편하게 갈 수 있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운동화 끝에 계속 쓸리고 있는 새끼발가락이 비명을 질렀고, 무릎은 의지와 달리 굽신거렸지만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중이었다. 이렇게 걷다가 멈추면 내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던 어떤 생각들에 잡아먹힐까 무서웠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지친 몸을 이끌었다. 무거운 발을 움직였다.


오르막길 다음엔 내리막길이다. 나는 내리막을 내려가면서도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나는 그때 내가 넘어질 것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자빠졌다. 말 그대로 자빠졌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걸어온 만큼을 나뒹굴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을 참으며 저절로 멈출 때까지 굴렀다. 처음엔 내가 넘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냥, 그 순간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뭐랄까, 어느 옛날 음악방송 카메라맨의 현란한 360도 카메라 회전 기술을 떠올리게 했다. 아주 현란하고, 무지 현란하고, 어지럽고, 대단했다.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보도블록에 왼쪽 뺨을 갖다 대고 엎어진 상태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다가 잠시 뒤, 생각을 바꿨다.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금 넘어진 나를 마음껏 비웃어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좀 덜 민망하지 않을까.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왜 우리들은 모두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넘어져 본 기억이 있지 않나. 아니면, 넘어진 친구를 놀려봤다던가.


어린 시절의 나는 줄곧 잘 넘어지는 아이였다. 자전거를 타다가도 넘어지고, 롤러를 타다가도 넘어지고, 계단을 내려가다 넘어지고, 그냥 걷다가도 넘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두 눈엔 속절없이 눈물이 솟았다. 깨진 무릎이 아프고, 까진 팔꿈치가 아프고, 상처 난 뺨이 속상해서. 그런데, 희한하지.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슬프게 기억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친구들. 그때 나와 함께 걸었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나의 눈물을 정화시켰기 때문이었다. 깔깔, 깔깔. 야, 얘 넘어졌어! 야! 괜찮냐? 와, 졸라 웃겨! 와하하! 야, 일어나, 이거 잡고 일어나, 아, 개웃겨! 얘 넘어지는 거 봤냐?


몇몇은 넘어진 나의 옆에 같이 드러눕기도 하고, 몇몇은 나를 흉내 내기 바빴다. 몇몇은 웃느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몸을 비틀거리며 나를 잡아 일으켰다. 그러면 나는, 울려다가도 울 수 없었다. 우는 대신, 나를 꼭 붙들고 휘청이며 웃는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같이 휘청이면서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크게 웃곤 했다.


나는 넘어져서 행복했고, 넘어져서 아프지 않았고, 넘어져서 웃겼다. 웃을 수 있었다. 금세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늘 누군가의 손을 붙들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어린 나는 그랬다. 그랬는데…….


지금의 내 주변은 고요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 날의 내가 부러웠다. 지금의 나도 그때처럼 일으켜 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일으켜주지 않아도 옆에서 배를 잡고 웃다가 손을 내밀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 좀 덜 민망할 텐데. 그러면 나도 같이 웃으면서, 나를 넘어지게 한 바닥을 살펴보면서, 아픈 부위를 눈으로 확인도 하면서, 그리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찔끔 나온 눈물을 대충 훔치면서, 두고두고 이 이야기를 하며 내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누구나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날이 있을 것이고,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날도 있을 것이다. 어린 날의 내가 부럽고, 부러움과 동시에 밉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 날도.


나는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하는 사람으로서, 매일 그 염원을 담아 집 근처의 연못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 중이다. 혹시나 내가 정말 과거로 돌아가기에 성공한다고 해도, 원래 했던 행동과 다름없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간을 돌리고 싶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조금 더 많이 넘어져보고, 조금 더 과감하게 후회를 저지르고 싶다.


사실,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많이 넘어져보고, 조금 더 과감하게 후회를 저지르면 될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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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게 왜 길에 떨어져있을까 고민하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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