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가 모자라서 'I'가 되었다

2022년 7월 12일

by 김단한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설문지 문제가 바뀌었다고 하여 궁금한 마음에 테스트를 시작했다. 처음 MBTI가 한창 난리였을 땐, E로 시작하는 알파벳 4자리를 얻었다. 사람들은 모두 날 보며 'E'일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E'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왜 나를 그렇게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일까. 나는 남들이 나에 대해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흠칫 놀라곤 한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서.


51%의 내향성과 49%의 외향성을 가진 내가 탄생한 건 오늘이었다. 오늘의 나는, 오늘부터 나는 'E'가 아니라 'I'였다. 이제야 뭔가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랄까. 아니, 애초에 제자리라는 것은 없었는데(MBTI가 뭔지 잘 몰랐을 시절), 그냥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참 웃겼다. 51%와 49%라니. 그럼 어쨌든 49%의 외향성도 있는 거네, 근데 한 2%의 무언가가 작용해서 나는 외향보다는 내향적인 사람이 되었다. 신기하다.


나는 나를 소심하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 같은 애들이 소심하다는 말 쓰는 거 아니야, 그럼 진짜 소심한 애들이 우울해져.' 나는 이런 말도 들어봤다. 아니,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다. 대화에 나오는 '너 같은 애'는 도대체 무엇이며, '진짜 소심한 애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한번 파고들면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관두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남들에게 많이 평가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참으로 다양한 수식어로.


그중에서 나를 가장 많이 감싸고도는 수식어는 '착해'였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주고, 편안하게 해 주고, 잘 웃어주고……. 그 모든 행위가 '착함'으로 굳혀졌다. 나 착해서 그런 거 아닌데, 그냥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그런 건데, 그거 말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건데, 너 좋으라고 그런 거 아닌데, 너한테 착하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그런 거 아닌데, 정말인데.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이 수십문장이었지만 오물오물 씹어 넘겼다.


다들 나더러 소심하지 말라고 하니, 나는 소심이 아니라 '조심'으로 내 성격의 일부분을 쌓아 올렸다. 사실, '소심과 조심의 연관성'에 관해선 할 말이 많다. 나는 소심하고 조심했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엔 어떤 말실수가 작용했는데, 그즈음에 나는, 정말로 꿈꾸던 '것'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것을 싫어했었다. 입술을 통과한 순간 '네가?' 하는 반응이 따라오는 것은 더 싫어했고. 아무튼, 그때 그렇게 행동해준 몇몇 사람 덕분에 나는 꿈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속삭이는 것을 택했다. 집에서 대체 뭘 하냐는 질문에, '꿈을 꾼다' 하지 않고 '무언가를 쓴다'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꿈을 꾼다고 말하면 나의 꿈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물을 것 같고, 무언가를 그냥 쓰고 있다고 하면 아, 쓰는구나 하면서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 내가 쓰는 것은 단순한 일기였는데, 남들은 그것을 크게 생각했다. '야, 단한이 글 쓴대. 작가가 꿈인가?'


작가가 꿈이었나? 아닌데. 아니었는데, 자꾸만 꿈을 묻는 사람들에게 '쓰고 있어요, 집에서, (일기를)' 하다 보니까 진짜 뭔가를 쓰게 되었고, 대뜸 글쓰기가 좋아졌다. 꿈을 뱉어내는 것에 소심했고, 조심했던 내가 아무렇지 않게 흘렸던 어떤 방패막이 같은 말이 정말 내가 이루고자 하는 무엇이 된 것이다.


내가 소심하거나 조심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과감하게 앞을 향해 달려가고, 보이는 모든 모습이 그저 'E'의 그 자체라면. 마음의 서랍 한편에 있는 어떤 꿈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글쎄, 나는 궁금하지 않다. 어쨌든 이게 나야. 이게 나니까. 소심하고, 조심하고, 'E'였다가 2% 모자라 'I'가 된 이게 나니까. 예전에는 정말 궁금한 마음에, 나도 바뀔 수 있나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부러워하는 어떤 이의 성격을 따라 해 보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흉내 내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나는 마음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어떤 것을 따르기로 했다.


나에게서 빼고 싶었던 소심, 착함, 어둔함, 우유부단함, 느릿느릿함 이런 것을 전부 빼고 나니 마음이 텅 비었다.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없네. 텅 비운 김에 마음 바닥이나 닦고 다시 이것들을 넣어놓아야겠다. 피곤하게 살지 말자. 그냥 나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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