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3일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어나더 어스>는 내가 한 번쯤 생각해보았던 일들을 사실적으로 펼쳐내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스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다만, 영화 소개의 줄거리에도 나와있듯 이 영화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새로운 행성 '제2의 지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자 주인공 로다는 억만장자 기업가가 후원하는 제2의 지구여행 프로젝트에 선발이 된다. 로다가 그곳으로 떠났는지, 안 떠났는지 또한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쓰지 않겠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한 번쯤 검색해서 보셔도 좋다만, '로맨스 아닌 로맨스 같은 로맨스라고?'와 같은 불편하고도 복잡한 장면도 나올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나는 이 영화를 언젠가 보았다. 보고, 오랫동안 그 쓸쓸한 분위기에 젖어있었다. '제2의 지구'를 발견했다니, 거기에 나와 생김새도 똑같고, 겪어온 일도 모두 똑같은 '존재'가 산다니, 너무나 신기하지 않나. 종일 폭죽을 터뜨려도 모자랄 판에 영화는 깊이 조용하다. 나 역시 가라앉는다. 나는 왜 가라앉았던 것일까.
처음엔 '제2의 지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곳의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함이 가장 컸다. 가족 구성도, 그리고 생김새도, 이름도 똑같고 사는 곳도 똑같단다. 평행세계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나와 성격이 똑같지는 않은 주체적인 또 다른 '나'라니. 그러니까, 나는 그 '나라는 나'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한 것이다. 살아오면서 똑같은 일을 겪은 것이라면, 그곳의 '나'는 지금 이곳에 있는 '나'보다 훨씬 더 멋지게 그것을 극복했을까. 아니면, 처참하게 무너져내려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나'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까. 단지 궁금함에 젖어 그런 곳이 진짜 있다면 냉큼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가서 무엇을 할까.
달리던 생각이 문득 멈춰 섰을 때, 머리를 가득 채운 질문이다. 가서 뭐해, 가서 뭐하냐고. 그 애(이제는 '제2의 나'가 아니라 '그 애'라고 부르겠다)는 나름대로의 극복을 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텐데 내가 거길 가서 뭐해. 내가 뭐라고. 그 애가 봤을 땐 내가 '제2의 나'일 텐데.
나는 금세 그곳에 가고 싶어 한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나에게 훈수를 두고 싶었고, 나와 나를 비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나를 나와 비교하려 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 애를 찾아가서, 잘 살고 있다면 또 부러워할 것이고(그게 또 다른 나임에도 불구하고), 잘 살지 못하고 과거에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머리끄덩이를 잡아채어 조금이라도 잘 살 수 있도록 훈수를 두겠지. 그러면서 마음으로는, 어쩌면, 흡족해할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잘 살고 있다는 어떤 마음이 발동하여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구나, 되는구나, 여기의 나는 아직 허우적거리는데 나는 똑바로 서 있구나' 안도할지도. 근데 그게 이리저리 치여 힘듦을 살아내고 있는 '나'를 보면서 할 생각은 아니지 않나.
그곳에 가고 싶어 한 이유를 깨닫자마자 그곳에 가기 싫어졌다. 그곳에 가기 싫어지고 난 다음에는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래의 나'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오면 어떡하지. 너 지금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너 지금 이렇게 해선 뭐도 안된다고, 당장 하고 있던 일, 쓰고 있던 글을 다 날려버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그러면 너 성공할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지. 귀가 얇은 나는 벌써부터 걱정이지만, 글 쓰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건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아('나'라면 내가 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이다) 그녀를 따르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곤 너는 잘 살아라, 나는 글을 쓸게, 글 쓰면서 잘 살아볼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나 좀 더 써볼래, 할지도.
'과거'의 나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는 '현재'의 나와 그런 나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는 '미래'의 나의 모습이 보인다. 셋 중 누가 제일 답답할까. 아무튼 '나'는 아닐 테다.
현실을 바라보는 적확한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어쨌든, 과거가 있어 현재도 있는 것이고, 그러니 내가 지금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과거 어쩌고 미래 어쩌고를 쓸 수 있는 것인데. 여기에서 미래가 끼어든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얀 종이 파일 위에 깜빡이는 커서처럼 눈만 끔뻑일 것 같다는 글을 장황하게 써보았다. 동의의 뜻이 전혀 없는 눈의 깜빡임.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겠다는 의지의 깜빡임.
언젠가 과거가 될 수 있는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