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미울 때마다 엄마에게 어린 시절의 '나'에 관해 물었다. 그때의 '나'를 나는 모른다. 그때의 '나'를 아는 유일한 사람은 엄마인데, 엄마는 내게 곧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미워!"라는 발음을 하지 못해 "매워!" 혹은 "미역!"이라 말했다는 자잘한 이야기에서부터, 눈앞에서 사라져 심장을 내려앉게 만들었던 그때의 '나'에 관해.
엄마에게서 나와 지금 이렇게 혼자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 앉기까지, 엄마는 나를 꾸준히 봐준 사람이다. 웃으면서도 보았고, 울면서도 보았고, 화를 꾹 참으면서도 보았겠고, 미워죽겠는데도 보았을 것이다. 나는 그 눈빛을 어떻게 받았을까.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럴 때 나는 과거를 훑는다. 작은 상자에 꼬깃꼬깃 접힌 과거들은 그때의 '나'를 부르는 이들로 가득하다. 사진부터 시작해 수업 시간 전달받았던 쪽지, 생일에 받았던 카드, 나의 연극을 보러 와준 이들의 방명록. 글씨는 제각각이다. 글씨에서 얼굴이 보인다. 글씨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글씨를 바라본다. 한쪽 어깨를 거의 책상에 붙게 만들고, 어깨를 옹송그리고, 주먹을 꽉 쥐고, 손가락으로 연필을 놓치지 않게 붙잡고, 꾹꾹 눌러 담은 글씨를 보며 나는 그들을 그린다. 잊지 않는다.
편지로 남겨진 글씨엔 사랑만이 그득하다. 오로지 사랑이다. 나의 안부를 묻거나, 어제 보았는데 또 보고 싶다는 말이 담겼다. 어딘가로 놀러 가자는 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친구들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받은 사랑도 있다. 어린이날에 받은 쪽지부터 시작해서 용돈이 담긴 하얀 봉투 앞에 쓰였던 그날을 대표하는 한 문장(생일 축하한다, 시험 끝난 것을 축하한다와 같은)까지.
그런 쪽으로는 또 기억이 특출 나서 나는 이것을 쓰는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것을 나에게 내밀던 모습도 떠오른다. 편지를 펼쳐 들고 거울을 봐야지만, 비로소 편지의 내용을 읽을 수 있는 창의력 넘치는 편지부터 시작해서, 그때 당시 유행했던 향기 나는 펜으로 썼다는 편지(지금은 향이 다 날아갔지만, 그 오묘한 향이 지금도 나는 것 같다)도 있다. 군대에서 온 편지도 있고, 서울에서 온 편지도 있고, 미국에서 날아온 편지도 있다. 각종 바람과 숨을 묻힌 편지는 나에게 하나의 세계를 가져다 줌이 분명하다. 그렇게 과거로 떠날 무렵, 제일 먼저 엄마의 편지를 열었다.
세 장의 편지 마지막엔 영화를 보러 가자는 귀여운 사랑이 적혔다. 엄마와 나는 어떤 일로 마음이 상했던 듯하다. 서로에게 상한 마음은 서로를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다. 어린 나는 그저 입만 툭 내밀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런 딸을 달래주기 위해 무려 세 장의 편지를 썼다. 전반적인 내용은 '너를 믿는다'였다. 종이비행기로 접힌 편지는 내 방에 착륙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한다.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러 가긴 했는지, 그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편지를 받고 마음이 붕 떴는지, 눈물을 흘렸는지, 그대로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는지, 나도 나의 마음을 전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가 내민 손만이 기억난다.
그래서 나는 자주 과거로 간다. 거기엔 나를 붙잡아줄 수 있는 숨은 사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