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초의 기억에 고이 남아있는 노래는 박진영의 '허니'다. 노래의 도입부가 굉장히 신선해서 나는 그야말로 이 노래를 처음 듣는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 노래를 나에게 처음 들려준 이는 나의 이모다. 하나밖에 없는 이모. 이모는 나에게 있어 쭉 친구이자, 가족이자, 선생님이자, 언니 역할을 해왔다. 이모의 글씨를 보면, 때마다 받은 선물도 기억난다. 킥보드가 유행할 당시엔 킥보드를 선물 받았고, 멜빵이 유행할 땐 딱 맞는 멜빵을 선물(그 선물을 곰돌이 포장지까지 예뻐 오래 기억에 남는다)을 받았다. 편지에 쓰인 것처럼 mp3가 유행할 땐 mp3를, 각종 장난감을, 어김없이 받았다.
이모의 글씨엔 커가는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어린이날엔 '너는 나의 영원한 어린이!'라는 귀여운 문장이 적혔다. 시험이 끝났을 땐 수고했단 말이, 대학 입학날엔 입학을 축하한다, 졸업엔 졸업을 축하한단 말이 어김없이 쓰였다. 이모는 나의 커가는 모습을 드문드문 지켜보면서, 내가 커가는 것을 황홀하게 봐준 이 중 하나다.
이모와 나는 많은 점이 닮았다. 나는 이모와 함께 하는 순간마다 그녀와 내가 닮은 자잘한 부분을 곧잘 찾아냈다. 우리는 쇼핑에 그다지 오랜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이 닮았다. 들어가자마다 오 분도 되지 않아 옷을 척척 골라 계산대로 향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더랬다. 문지방이나 탁자 끝에 자주 부딪혀 아오, 혹은 오우, 소리를 하루에 꼭 한 번씩은 내는 것도 닮았다. 흥미를 가진 일엔 잔뜩 눈을 반짝였다가, 지루하다 싶으면 미련 없이 눈을 떼는 것도 닮았다.
하나 꽂히면 끝까지 파고드는 것도 닮았다. '허니' 노래도 그래서 듣게 된 것이었다. 아주 어린 나에게 그 노래는 여러모로 참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그런 기억을 심어준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이모라는 점에서 나는 이 기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정황은 이렇다. 외갓집에서의 어느 날이었다. 가족들이 모여 윷놀이를 즐길 때, 나는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승부욕에 잔뜩 버무려져 있었다. 우리 팀이 졌고, 우리 팀이 진 결정적인 이유가 이모가 던진 막판 뒤집기의 윷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나는 잔뜩 심술을 부렸다. 윷을 던지고, 울고, 발버둥을 치고, 씩씩거렸다. 그런 나를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다. 가만히 놔두면 어련히 알아서 풀리겠거니, 하는 눈빛들이 나를 감쌌을 때. 이모는 나의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섰다. 사실, 바깥공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심술의 반은 풀린 상태였는데 이모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나를 빨갛고 작은 차에 태웠다.
"이 노래 이모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이모는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이렇게 차에 와서, 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불러."
이모가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차 안 가득 '오우, 허니, 움~마!' 하는 간드러진 목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란 나는 눈을 크게 떴는데, 곧장 웃음을 터트린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유는. 노래 때문이 아니라 이모의 몸짓 때문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이모는 조수석에 앉은 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며, 한 손으론 코를 막고 한 손은 위에서 아래로 팔랑팔랑 흔들었다. 나중에서야 그게 '허니' 춤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걸 그때는 알리가 없었으니. 이모의 행동은 나를 놀라게 하기, 아니, 행복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배를 잡고 웃었다. 이모의 춤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나는 이모를 보며 윷놀이고 뭐고 다 잊어버렸다. 오로지, 그 순간만을 기억했다. 커갈수록 그 기억은 나에게 오래, 예쁜 색으로 남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엔 그 자체로의 행복한 충격이라 오래 남았고, 다음엔… 아이의 투정을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준 어른에 대한 고마움의 기억으로 오래 남았다.
나는 이모 덕분에 조금 더 다른 면의 세상을 보았다. 중고서점도 처음 가봤고, 일산 라페스타도 처음 가봤다. 맛있는 호텔 음식을 처음 먹은 것도,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을 처음 본 것도, 전부 이모와 함께였다.
나는 나에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을 거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희들이 아이를 낳으면, 내가 그 아이들을 아주 가끔 잘 돌봐줄게. 돈 많은 이모, 고모가 돼서 걔네들한테 용돈도 팍팍 주고, 부모님한테 차마 못하는 말도 내가 좀 들어주고, 그런 편한 이모, 고모가 될 거야. 난 그거면 돼.'
내가 그 말을 하면서 누구를 떠올리는지, 이 글을 읽은 이들은 이제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