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편한 사랑을 원하는 이들에겐 사랑키트가 제공되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간단하지만,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구성된. 오로지 사랑을 위한, 사랑에 의한, 사랑을 어쩌고. 이 부분에 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그런 것이 있으면 편할 것 같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어메니티 같은. 작은 파우치에 사랑할 때 필요한 무엇들이 들어있는 식으로.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게.
그러나 생각을 깊게 하면, 곧잘 막히곤 한다. 사랑엔 도대체 어떤 것이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요즘 내가 제일 꽂혀 있는 말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없다. 안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라는 말인데.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당장 가족과의 사랑과 연인과의 사랑을 비교해 보아도 둘은 아주 다른 모습을 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랑은 늘 모습을 달리 한다.
사랑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둘이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가 더 행복하다는 생각도 원 없이 한 적이 있었다. 이별을 고하는 입장이 되어본 적이 있었다. 그 입장이 되었을 때, 나는 상대에게 가차 없이 말했다. 더는 감정소모를 하고 싶지 않다고. 나는 왜 그런 말로 이별을 고했던 걸까.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것 자체가 감정을 무한히 쓰는 행위일 텐데. 왜 나는 그것을 그만하고 싶다고 선언했던 걸까. 꼭 좋은 감정만을 받고, 나에게 남은 나쁜 감정을 쏟아내는 것만이 사랑이 아닐 텐데. 사랑은 뭘까.
사람과 사랑에 대해 글을 쓴다고 외치고 다니면서도,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다. 사랑도 모르겠고, 사람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이 축 늘어질 무렵 K를 만났다. K는 사랑을 어려워하는 나에게 학습지 선생님처럼 말했다.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어려울 것 하나도 없다고. 있는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고. 나는 그때 마음의 모난 부분이 아직 둥글어지지 않아서 그 말이 그리 재미있게 들리지 않았다. K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K도 많은 이들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었다. K는 상처받은 마음을 잘 다져 그 위에 올라선 채 나보다는 조금 더 극복, 어쩌면 초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랑을 어렵지 않게, 문제없이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은 늘 어려운 것 아닐까. 잘하고 싶은 욕심에 더 긴장하게 되는 발표 직전의 마음처럼. 그 긴장이 계속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아닌가. 좋은 것을 보면 저절로 떠오르고, 외로운 어느 날 문득 생각나는 그런 게 사랑일까. 마음의 방 한 구석을 내어주는 것이 사랑일까.
K는 나에게 작은 방을 내어주었다. 방을 예쁘게 꾸며주기도 했다. 아픈 나를 걱정해 주었다. K가 보여주는 행동은 단순했다. 몸이 아픈 어느 날, K는 나에게 아프지 말라고 했고, 빨리 나아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자는 메모를 남겼다. 밀려드는 감정에 괜히 겁이 난 나는 그에게 '연락 금지령'을 내렸고, 그는 '연락 금지'라는 말은 하지 말라며 아주 가볍게 마음을 전했다.
K의 사랑에선 용기가 보였다. 나는 K와 맛있는 맥주를 마시고, 공원에서 걷는 상상을 함으로써 조금은 나았다. 그 이후로 연락 금지란 말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