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통의 사랑

by 김단한

나는 음담패설을 싫어한다. 친구들과의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나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런 나를 아는 이들 중 누군가는 말한다. 야, 그런 이야기하지 마. 단한이는 그런 이야기 싫어해. 그럼 나는 나머지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 비슷한 것을 받는다. 들어보면 꽤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왜 맥을 끊냐는 둥, 너는 이야기하지 말고 듣기만 하라는 둥, 다양한 소리가 오간다. 나는 음담패설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듣는 것은 더욱 싫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섹스'나 '성관계' 같은 것은 나로 하여금 큰 '환상'을 품게 하기 때문에, 그 환상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가볍게 흐르는 이야기가 싫은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아니다. 그럼 뭘까.


입에서 입으로 흐르는 음담패설은 결국 자기 자신이 겪은 이야기 거나, 몇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직접 겪은 이야기 중 하나이다. 나는 나의 친구가 발가벗고 다른 누군가와 뒹굴다 느낀 감정이나 몇 다리 건너 아는, 나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성관계를 하던 도중 떠오른 생각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그 순간을 웃기고, 필요 없고, 아주 가벼운 것으로 치부하는 것도 나는 싫다. 그래서 음담패설이 극도로 피하는 것일까. 굳이 따지자면 그렇겠다.


그렇다고 모두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도 오간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 '사실 말이야'로 시작하는 말들이 많아졌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그냥 지금 이야기하는 건데,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마, 너만 알고 있어,라는 부담감이 얹힌 이야기는 꽤 정교하다. 대부분은 현재 관계를 맺고 있는 이와의 불완전함과 관계가 끝나고 난 다음의 허무함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들이 많다. 아, 이 글을 쓰면서 알겠다. 내가 그들의 성관계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을 온전히 둘만의 시간이고, 둘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온전히 두 사람을 향하는 것이지, 중간에 누군가의 조언이나 누군가의 해결 방안이 끼어드는 순간 관계의 흐름은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게 마련이기에. 그래서,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은 것일 테다.


물론, 나도 다른 이들에게 나의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더랬다. 도대체 그 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둥,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다는 둥.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의도로 그런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그만 안다. 궁금하면, 그에게 직접 물어볼 것. 그것이 머릿속에 박히고 난 이후부터 나에게 닿는 모든 연애 상담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흘리고, 최대한 이야기하는 이의 감정을 보듬어주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의 의중을 모르겠다는 것이 그의 주된 고민이었다. 친구는 말했다. 모든 것을 나 혼자 해. 사랑도 나 혼자만 하는 것 같아. 나는 친구가 어떤 점에서 그런 부분을 느꼈는지에 대해 물었다. 친구는 말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건 항상 나야. 나는 항상 그를 기다려야 해. 심지어, 모텔에서도 방을 잡고 기다린 적이 있어. 나는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나는 뭘까. 이 사랑은 뭘까. 그러고도 30분이 지나서 그가 도착했어. 문을 열어줬지, 술을 한 아름 사들고 왔더라고. 그때부터 무언가에 쫓기듯이 빠르게 술을 같이 마시고, 내가 취했는지 취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더니, 약간 취했다는 걸 확인하고 난 다음엔 바로 잠자리를 가지려고 했어. 나는 당시 그와의 관계에 대해 확신이 없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잠자리가 다 끝나고 나서, 그의 품에 안겨서 나는 물었어. 나는 뭐야? 그랬더니 그가 그러더라고. 뭐긴 뭐야, 너는 너지.


친구는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사랑이란 뭘까. 뭐길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그것이 이렇게나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걸까. 누군가는 사랑에 대해 그저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것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견고히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각자에게 다르게 작용할 수는 있겠으나, 사랑을 눈으로 본 이는 없다. 사랑이 뭔지 물어본다면, 다들 무언가에 빗대서 이야기한다. 상대를 바라보는 눈, 잡은 손, 끌어안는 몸.


사랑을 확인하는 끝의 행위가 잠자리라는 것이, 그걸로 뭔가를 확인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 나는 너무도 아니꼽다. 친구는 그에게 속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뭐야? 물었을 때, 그가 뭐긴 뭐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지,라고 말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것에 있어서, 확신을 줘야 하는 것에 있어서 사랑은 참, 어렵다. 사실, 그는 정답을 말했다. 너는 너다. 사랑함에 있어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그것.


다시 음담패설 이야기로 돌아가자. 관계를 가지는 것에 있어서 아주 관대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것을 아주 쉽게 이야기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 그것으로 하여금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또, 나 같은 사람도 있겠다. 굳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랑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사랑에 관해 말하는 것에 있어서 정답은 없으니까. 관계를 사랑한다고 해서 가벼운 사람이 아니고, 관계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고 해서 깍쟁이는 아니니까.


나는 다만 관계에 있어서 허무함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말할 뿐이다. 괜찮다. 종소리가 들려오지 않아도 괜찮다. 황홀경에 다다르지 않아도 괜찮다. 이상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하고 싶지 않을 땐 하지 말아라. 세상에 꼭 해야 하는 건 없다. 특히 사랑에 있어선. 잊지 말자. 너는 너다. 나는 나다.


나는 사랑에 관해 정말 모르면서도, 아주 통달한 것처럼 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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