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1일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을 언제까지 잊지 않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 말은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뜻도 되겠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차례차례 보내드린 후, 한동안 공허함만 남았다. 나의 첫 출간 책인 <나일론 시한부>에도 나와있듯이, 외할머니와 나의 사이는 각별했다. 나는 한순간 사라진 그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집을 짓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일 뿐, 그냥 다른 세계도 아니고 이 세상 어딘가. 그래서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분명, '이 세상'이라는 겹치는 부분은 있는데 볼 수 없으니 얼마나 애가 닳는가.
'허무하다'라고 했다. 할머니 생신상에 올릴 청하 소주와 달달한 것들, 그리고 과일 몇 개와 나의 책, 두 분의 영정사진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모는 허무하다고 했다. '멀쩡하게 살아계시던 분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게 너무 허무하지 않니' 이모는 계속해서 허무를 말했다.
이 날은 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눈물에는 연쇄작용이 있어서 누군가가 터지면, 같이 터지게 마련인데 이 날은 다들 목구멍과 눈물샘에 끼워 넣는 각자의 코르크 마개를 잘 가져온 듯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살아계셨으면 이러셨을 것이다에 관련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올리고, 각자 한 마디씩 하고 생일상은 다시없던 듯 치워졌다. 이것도 허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왔다가 간다. 영생을 바라는 이들도 있겠고, 그러면서도 한순간에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고, 열심히 꾸준히 하나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죽음'이 늘 근처에 있는 것처럼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라는 것이 멀리 있고 아직 나와 관련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죽음'과는 너무 데면데면해서, 나는 그것이 나와 친해지기 위해 슬쩍 다가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나서 사라지는 것이 나는 참으로 허무했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이니 이 아픔을 잘 견뎌내야 할 텐데. 아픔을 잘 견뎌내는 방법, 시간을 잘 버티는 법 따위 잘 모르므로 나는 시종일관 아파하고, 울고, 힘들어했다. 내가 하고 있는 행위도 누군가를 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방법. 방법일까.
방법이라면 방법일 수 있겠지만, 나는 내가 하는 방식에 굳이 방법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지 않다. 왠지 모르게 방법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시종일관 아파하고, 울고, 힘들어하고, 그리워했던 모든 시간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아파하고 울고, 힘들어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무언가를 잊는 수단과 방법으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닥치는 대로 소화하고 싶을 뿐.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어딘가가 제대로 곪아 터졌을 것이다. 고로, 누군가를 잘 잊을 수 있는, 아프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란 없을 것이다.
울 땐 울어야 하고, 먹을 땐 먹어야 한다. 우는 것에 미안해하고, 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남은 삶을 보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잘 먹고, 잘 울고, 잘 웃고, 잘 살고, 잘 잊는 것이야말로 꼭 필요한 것. 어느 순간, 속절없이 그리워 눈물이 툭 흐를 땐 그냥 흘려주는 것. 그것이 남은 이가 해야 할 것.
사람의 부재가 무서워 한동안 곁을 내지 않은 적이 많았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부재는 두렵고, 익숙할 수 없다. 그렇게 자리를 비워놓으면 그 안엔 상념만 가득 찼다. 온갖 잡생각이 밀려들어 차라리 누군가가 말없이 들어차 앉아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은 당연히 떠나고, 또 그 빈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꿰찬다. 어쩔 땐 동일인물인 경우도 많다. 그 사람의 껍데기는 가고, 그 사람의 속만 남아 부재를 더욱 실감하게 만드는 일도 많다.
이제는 누군가의 부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힘껏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함으로써,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나는 분명, 누군가의, 무엇과의 부재와 헤어짐을 경험한다면 또 한없이 무너지고 바닥을 구르고, 땅을 치며 울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그 무엇의 부재도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