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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Jul 29. 2022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머리와 입이 따로 노는 현상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한참 동안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미간을 찌푸리며 '정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한 것도 같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그럴 일이 없다 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말투다. 나는 실제로도 그렇게 믿었다. 나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럴 줄이야.

내가 그랬다. 나의 입에서 전혀 나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말이 하고 튀어나오는 순간을 나는 경험했다. 나는 종업원의 피식, 웃는 웃음과 주변의 사람들이 한 번쯤 나를 돌아보며 웃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짧은 정적. 그 짧은 순간. 그 작은 한 조각이 내 마음에 박혀 몇 번이고 나를 그 순간으로 데려간다.


당황하면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금세 당황하여 횡설수설하고 만다.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의 말을 정리하지 못하면 꼭 다른 말이 뱉어진다. 입은 내가 스스로 단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느꼈다. 마음에서부터, 혹은 뇌에서부터 생각했던 것이 입으로 쏘아 올려지기까지의 시간은 굉장히 빠르다. 거의 마하의 속도다. 나는 입을 꾹 다물기도 전에 뱉어진 말을 멍하게 볼 뿐이고, 그런 말들이 가져오는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다시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로 넘어가 보자. 아침이었다. 약간의 비몽사몽이 있었을 줄로 안다. 오랜만에 서울로 일을 보러 가야 하는 날이었다. 은근한 긴장과 조급함이 마음을 맴돌았을 무렵,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굶지 말고, 뭐라도 먹고 가라는 따뜻한 메시지. 역에 자리한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기프티콘이었다. 마침 시간도 남았고, 뭐라도 먹어야 서울에서의 일정을 그나마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카페로 향했다. 카페엔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있었고, 두 명의 종업원은 쉴 새 없이 바빴다. 나는 메시지에 뜬 기프티콘을 보여주며 사용 여부를 물었다. 종업원은 아주 빠르고 정확한 발음으로, 현재 샌드위치가 없어 기프티콘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을 표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럼 샌드위치 말고 다른 걸로 바꿔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종업원은 지금 준비된 부분이 없어서 그럴 수 없다는 답을 해왔다. 내 뒤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내가 비켜야만 그들은 주문을 할 수 있었고, 이미 그들은 주문을 할 준비를 다 마친 채 나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얼른 주문을 해야 하는데. 앞뒤로 느껴지는 압박감에 나는 기어코 그 말을 뱉고 만다. 그럼,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나의 말에 종업원은 웃는다. 뒤에서도 픽픽,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오늘 누군가의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늘 이런 식이다. 당황하면 말을 잘 못한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그저 당황해 정리되지 않은 말을 내뱉고 매번 헛발을 짚는다. 당연히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기프티콘을 사용할 수 없음에 나는 당황하고야 말았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인데. 정말 이 세상은 변수로 가득한데. 다음의 대책이 빠르게 서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의 압박을 받을 때 나는 항상 엉뚱한 것을 선택하거나 말하고, 후회하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란 사람에 대한 자책이 한동안 이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생겨나지 않은 변수까지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차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해 당황하는 내가 있다. 나는 삶을 살며 수없이 당황하고, 부끄러워하고, 멈추고, 놀란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는, 나의 엉뚱함을 고찰해보는 어떠한 기록이며 흑역사 모음집이 될지도 모른다. 마음에만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쏟아붓는 것엔 글만한 것이 없으므로 나는 또 여기에다가 나의 한 부분을 적어본다. 누군가는 웃을 테고, 누군가는 공감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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