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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Aug 02. 2022

365일 무음 모드

소음에 취약한 나의 방 천장에서는 언제나 진동이 울린다. 아래층까지 들리는 정도라면 충분히 집안 전체를 울릴만한 크기일 텐데도, 윗집에 사는 누군가는 오랫동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참 울리던 진동이 끊기고, 또 한 차례 울리면 그제야 저 멀리서 쿵쿵 걸어와 바닥에 둔 휴대전화를 집어 드는 것 같다. 나는 내 방 안에서 진동소리가 울려도 나의 휴대전화를 급하게 찾는 일을 하지 않는다. 급할 것이 없다. 울리는 진동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나는 365일 무음 모드를 유지한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나를 찾는 울림을 피하고 싶어졌다. 가끔 나의 방을 비행기 안으로 만들어 비행기 모드를 눌러본다던가, 아예 소리 없는 무음을 선택하는 것은 나에겐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다. 사실, 비행기 모드를 오래 눌러놓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것대로 불안함을 유발한다. 어쩌면, 나를 정말이지 급하게 찾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온전히 무음으로만, 기기를 나의 가까이에 두는 것으로 나를 보호하는 방법에 타협 아닌 타협을 이뤘다.


모르는 번호가 싫다. 전화를 받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를 파악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나의 휴대전화에는 총 50개 정도의 전화번호가 있다. 50개 남짓한 번호도 전화가 자주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불안감을 선사할 일이 잘 없다. 알아야 하는 번호는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르는 번호에 관해 은근히 겁을 내는 것일까. 대출을 권유하거나, 어떠한 상품을 권유하거나, 어쩌면 보이스피싱일 수도 있는 전화를 받는 일엔 이젠 이골이 났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야 할 때의 나는, 그야말로 만만의 준비를 한다. 내가 해야 하는 말과 묻고 싶은 용건을 메모장에 써놓고 연습한 다음 전화를 건다. 그렇지 않으면 말을 더듬거나,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기 때문에. 예전엔 음식을 주문하는 것조차 힘들어 이러한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아예 전화기도 들지 못했다. 이젠, 손가락 몇 번의 터치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만, 아직까지 아날로그인 나에게는 이것저것 난관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중요한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거나 미루지는 않는다. 잠시 숨을 고르고, 곧바로 전화를 다시 하는 편이다. 그런 나의 곁엔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창과 방패인 펜과 종이가 함께 한다. 나는 전화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간단한 키워드를 적어놓음으로써, 전화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그 옆에는 (ㅠㅠ), 혹은 (……), 혹은 ★○◆▲◎ 와 같은 도형들이 몇 개씩 그려져 있다. 이러한 기호는 내가 끝까지 전화 통화에 집중을 하겠다는 의지다.


처음부터 모르는 번호와 진동을 꺼려하는 건 아니었는데. 조금 더 정확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한 템포 물러나는 버릇을 가진 이후로부터 이렇게 된 것 같다. 어떤 연유로든 나를 찾는 이에게, 하물며 잘못 걸었어도 이 번호가 당신이 찾는 그 번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용기가 필요한데, 아직 나는 그 부분에서 나를 압박해온 긴장에서 전혀 익숙해지질 못하겠다.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저지저찌하여, 모르는 번호도 척척 잘 받고, 갑작스레 오는 전화에도 정확한 응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라는 마무리로 이 글을 마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나는 아직, 아니 언제까지고 그런 마무리를 잘 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이게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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