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한 Jul 31. 2022

부끄럽고 민망할수록 더 웃어버린다

허허실실

사람의 표정에 디폴트값이 있다면 나의 표정에는 아마 '허허실실'이라는 단어가 스며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참 잘 웃는다. 웃음이 많아서, 라고 말하기에는 웃음에 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웃음은 아마 내가 살아남기 위한, 어쩌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나는 그저 웃는다. 나와 눈을 마주한 누군가들은 내가 보이고 있는 은은한 미소에 여러가지의 의미를 담을 수도 있겠다만, 아까도 쓴 것처럼 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그렇게 웃지마, 사람들이 너를 낮게 봐, 자꾸 웃는다고 좋은 거 아니야, 너 자꾸 웃으면 만만해보여 등의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어왔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에도 웃고 있었던 걸. 나는 차라리 만만해짐을 택한다. 나는 차라리 만만하고 싶고, 사람들이 나를 낮게 봐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것을 자처하며 웃는다. 실제로 거의 매일 웃고 다녔더니 꽤 많은 사람의 레이더망에서 배제되곤 했다. 기쁜 일이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 광대는 봉긋 솟는다. 살짝 튀어나온 앞니와 늘어지는 눈꼬리는 나의 웃음에 진정성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정말 그 웃음에 진정성이 있을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땐 박수를 치며 웃는다. 몸을 뒤로 젖히거나 덩달아 고개를 하늘로 쳐드는 행동도 한다. 정말 웃길 땐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눈물이 나지 않아도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말을 하며 눈가를 닦는다. 편한 사이에는 웃음도 편하게 나온다. 앞니가 모두 드러나고 잇몸을 내보여도 부끄럽지 않다. 얼굴을 마구 찡그린 채로 한바탕 웃고, 숨을 몰아쉬면 약간 충전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 못한 이 모든 반대 상황에서의 나는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웃는다. '허헤'와 같은 엉뚱한 소리를 내면서 어깨를 한번 들썩이기도 한다. 나의 웃음에는 그저 모든 상황이 적절하게 지났으면 좋겠고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길 바라며 얼른 내가 집에 안전히 돌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불안함의 웃음은 얼굴을 경직되게 만든다. 어색하게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웃고, 목소리는 항상 '솔'을 유지한다. 이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나면 나는 금세 무표정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나의 무표정은 실로 무(無)일 뿐이라, 올라갔던 입꼬리가 내려오고 얼굴에 억지로 주었던 힘을 푸는 느낌이 고스란히 드러나보인다. 목소리도 새삼 낮아진다. 그제야 내가 된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냐, 는 말도 들어봤고, 그러지 말라는 말로 들어봤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고 그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차마 내세우지 못하는 나의 의견에 관련하여 안타까움을 표하거나 상대방의 무례함에 소심하게나마 내가 날릴 수 있는 펀치는 웃음이다. 나는 그저 웃음으로써,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날리고 상대의 무례함도 날려버리려 노력한다. '무례하시네요' 라던지,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라던지, '욕' 같은 것을 하지 못해서 나는 더 자주 웃는다. 

이전 01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