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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Aug 03. 2022

소통이 어려운 33살입니다

소통과 맞팔이라는 단어는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있는 단어지만, 나와는 약간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단어이다. 사실, 나는 소통을 어떤 식으로 이루어야 하는지, 그렇게 이어진 인맥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매번 어딘가에 가 있는 친구가 있었다. 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혹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남으로 바쁜 친구는 그 무렵 내가 인정하는 소통왕이자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나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늘 부러웠다. 그런 점에 있어서 친구는 완벽해 보였다. 저 친구는 나보다 더 많은 기쁨과 축복과 행복, 여러 가지를 누리겠구나 생각했다. 혼자 저녁을 먹는 나와는 영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친구가 울면서 전화가 온 건 그즈음 어느 밤이었다. 친구가 말했다. 정말 필요할 때, 전화받아주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 정말 힘들어 죽겠는데 아무도 나를 만나주지 않아, 다 가짜야. 그때 전화를 끝으로 친구는 자신의 주변을 정리했다. 한층 홀가분해진 친구의 표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진정한 소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다.


나는 손에 꼽을 정도의 친구가 있다. 한 살씩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채에 걸러지듯 친구들이 쑥쑥 빠져나갔다. 나의 잘못도 분명 있을 것이고, 친구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 누구 한 명이 온전히 잘못한 것은 없을 테다. 어쨌든, 오랫동안 이어진 관계가 끊어진 것에는 모두의 잘못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친구를 살뜰하게 챙기지 못한 죄. 살갑게 먼저 연락하지 못하고, 연락이 와야만 받는 성격의 나는 친구들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들을 속상하게 했다. 그런다고 억지로 연락을 하려 드니 그것은 또 그것대로의 가식으로 남아서, 다들 싫어하기 바빴다. 너대로 해. 그래서 나대로 했는데, 그러면 또 떠나갔다. 나는 갈 사람은 그냥 가게 놔둠으로써 내 중심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에 힘을 쓰며 버텼다. 발가락 끝까지 힘을 주며 버틴 결과, 나에겐 손에 꼽을 정도의 친구만 남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친구들과는 잊히지 않을 정도의 소통을 이어가는 중이다.


글을 읽고 여러 가지 의견을 내주시는 분들, 잘 읽었다고 해주시는 분들께도 나는 어쩌면 '소통의 부재'를 전달 중에 있다. 마음 같아선 긴 장문의 글로 답하고 싶고, 하트를 누를 수 있는 기능을 남발하고 싶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오늘도 몇 달 전에 달린 답글을 그저 보고만 있다. SNS로 활발히 소통하는 작가들을 보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도 멋진 글과 사진을 공유하며 누군가의 마음에 한 줄을 심고 싶다. 그러다가도 망설인다. 멋진 글이 없어서, 멋진 사진이 없어서……. 핑계는 많다. 아이고, 이래서 무슨 소통을 하냐.


창작자로서 책임감이 없다. 너의 글에 대해 다양히 표현하는 이들의 마음을 그렇게 묵살하면 어떡하냐, 는 말을 들었다. 가슴이 덴 듯 뜨겁다. SNS와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천성의 나는 오늘도 한층 더 작아진다. 조금은 용기를 내보아야지. 용기를 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너무 늦은 답글이 달리더라도 충만한 이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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