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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Aug 04. 2022

왜요? 제가 새치기당하게 생겼나요?

여기 제 자리인데요. 여기 제가 그쪽보다 먼저 와서 아까부터 줄 서 있었는데요. 한참이나. 


나는 이 짧은 한 마디를 못해서 누가 내 옆에 슬쩍 들어와 새치기를 하면, 되려 당황해 비켜주고, 내가 찜해놓은 자리에 누군가들이 우르르 앉아있으면 그들의 엉덩이에 깔린 내 가방을 슬며시 들고 나온다. 정말 그 짧은 한 마디를 하지 못해서.


내가 새치기를 잘 당하게 생겼나. 나의 물음에 친구는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게 생각할 만한 상황인가 싶었을 때, 친구가 말을 이었다. 좀 만만해 보이긴 하지. 


화가 났다. 만만해 보이거나 새치기를 당하게 생긴(?) 사람이면 살아가며 이런 부당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해도 되는 것일까. 아, 나는 만만하게 생겼으니까, 아 나는 새치기를 잘 당하게 생겼으니까 언제든지 새치기를 하십시오, 해야 하는 걸까. 그건 새치기를 하는 그 사람의 잘못인가 말없이 치이며 자리를 빼앗기는 나의 답답함이 잘못인가. 누군가는 그러겠지. 큰 소리로 그냥 말하라고, 그의 잘못을 알리라고. 나는 매번 나에게 '나였으면 이랬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나 싫다. '내가 그럴 수 있었으면 그랬겠지, 그러고도 남았겠지, 찌질하게 글을 쓰고 있겠냐고' 라고 정말이지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고 싶다. 나는 그런 배포가 없어 진작에 그런 모든 일들을 관둔다. 참자, 한 번만 참자, 하고 쌓인 것이 벌써 마음에 몇백층 석탑을 만들고도 남았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을 때였다. 강남이었는데, 그곳은 희한하게도 바닥에 버스 번호가 붙여져 있고 탈 사람은 알아서 그 번호 쪽에 줄을 서면 되었다. 인도를 가로질러서 서는 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띄엄띄엄 서서 자신이 버스를 탈 사람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었는데…… 내가 새치기 잘 당하게 생긴 사람이라는 것이 티가 난 것일까. 희한하게도 내 앞으로만 사람들이 마구 지나다녔다. 또, 줄을 서기도 했다. 정말 나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덕분에 나는 버스를 놓칠 뻔했고, 내가 답답했던 뒷사람들이 앞으로 몰려오는 바람에 나는 내 자리를 잃고, 명예도 잃고, 존엄성도 잃고, 다 잃어버렸다. 앉을 수 있었는데 못 앉고, 이게 다 내 업보겠거니 하면서 길고 긴 여정을 달리고 달렸더랬다. 


아. 이젠 나도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 나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엄연히 새치기는 좋지 못한 것이고, 나의 자리를 내가 지킬 권리는 나에게 분명히 있는 것이니까. 나는 나의 자리에도 잘 서 있어야 하고, 누구든 옆에서 끼어들어 나의 주변과 특히 나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요즘엔 글을 쓰며 내가 참 답답한 사람이구나, 참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곤 한다. 어쩔 수 없음은 참, 습한 말이다. 


어쨌든, 이젠 이야기해야지. 여기 자리 있어요, 혹은 사람 있어요,라고. 지금보다 조금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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