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개하는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나는 아직까지도 '자기소개'라는 영역이 두렵고 무섭다. 딱히 나를 알릴 일이 없던 나는 흔히 '자소서'라 불리는 자기소개서를 쓸 일이 거의 없었다.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제출하는 이력서에는 그간 어떤 일을 주로 해왔는지를 적으면 끝이었다. 나를 고용하는 편의점 사장님이나 세계맥주집 사장님, 혹은 고깃집 사장님은 나의 취미가 무엇인지 특기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일을 했고,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열심히 일을 때려치우지 않고 했는가, 만 물어보았을 뿐.
친구들이 자기소개서를 쓰며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한 번은 친구에게, '그냥 네가 잘하는 걸 쓰면 되는 거 아냐?'라고 말했었다. 친구는 나를 정말 이제 막 태어난 사람처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안돼. 자기소개서는 그렇게 쓰는 거 아니야. 어떤 영화가 인생영화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단 말이야. 나를 어필해야 해, 나를. 내가 얼마나 유능한 인재이고, 이 회사에서 얼마나 일을 오랫동안 묵직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야 해.
나는 한동안 친구의 말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게 무슨 자기소개야. 그러다가도 생각했다. 수많은 '나' 중에, 일을 하기에 적합한 '나'에 대해서 쓰는 것이 자기소개인 것일까, 하고. 그러면 나는 평생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를 쓸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말해서, 평생 '그들'이 좋아할 만한 자기소개서를 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나의 어떤 면을 적어야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지 알 수 없었다. 누구도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직 나만이 나를 소개할 수 있는데도 그랬다.
새 학기가 막 시작될 무렵, 한 사람씩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름을 말하면 조용했고, 나이를 말하면 웃었다. 같은 나이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한 반에 모여있으니 나이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때, 취미로는 영화보기, 책 읽기. 특기로는 책에서 좋아하는 문장 뽑아내기, 정도를 말했던 것 같다. 아직 나와 한 마디도 나눠본 적 없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화보기랑 책 읽기는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니야? 그걸 취미나 특기로 말하면 안 되지.' 그 이후로 나는 취미나 특기를 물어보는 목소리에 갈수록 작아졌다. 그랬구나, 나만 가진 특별한 장기가 아니었구나, 하며. 당시에는 세상을 경험할 시간이 별로 없어 모든 것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그때는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작아지기만 했다.
그러면, 커서는 자기소개를 잘할 수 있게 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내가 아는 내가 진짜 나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를 소개하는 것은 나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누군가가 대신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곤 한다.
메일이 도착했다. '자기소개' 이벤트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자기소개를 잘하는 사람에게 경품을 준다는 멘트를 읽고, 곧장 메일함을 나와버렸다. 자기소개는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집에 혼자 있길 좋아하고,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을 좋아합니다, 매운 떡볶이를 좋아하고, 책을 읽을 땐 항상 빗소리가 포함된 음악을 들으며 읽습니다, 책과 영화, 드라마의 장르는 가리지 않으며, 무언가를 읽고 듣고 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적으면 안 되는 걸까. '잘리는 걸까'. '채택되지 않는 걸까'.
모르겠다. 자기소개는 대체 무엇인가. 또, 나는 누구인가. 소개하려 할수록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