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마셔라! 마셔라!'를 외치던 시대는 끝났다. 끝도 없는 어깨춤을 추거나, 어깨가 탈골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서른 이후, 아니 훨씬 그전부터 나는 술 게임과 멀어졌다. 학교를 마치면, 무조건 동아리, 혹은 과의 술 모임에 참석했어야 했던 나는 그곳에서 갖가지 술 게임을 배웠더랬다. 본래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타입이라 맥주 몇 잔을 홀짝거리며 열심히 게임에 임했던(걸리지 않기 위해) 나는, 이젠 술잔을 앞에 놓고 내일이면 생각나지도 않을 이야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 쓸데없는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나누는 나이가 되었다.
삶의 방향이 달라지면서 친구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고향을 떠난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 중에서 제일 먼저, 그러니까 선발대로 서울에 다녀온 이였다. 5년간의 철저한 사투 끝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나와 바통터치라도 하듯 친구들은 하나 둘, 서울로 떠났다. 같은 시간에 매일 학교에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던…… 마치, 고등학생 때처럼 매순간 친구가 곁에 있던 시간은 자연스레 사라진 것이었다. 어쩌다 한번, 여름휴가를 핑계로, 명절을 핑계로 고향에 내려오는 친구들은 마치 고향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집안에 박혀 나오지 않는 나를 불러내곤 했다. 친구들은 볼 때마다 달랐다. 휙휙 바뀌는 삶을 열심히 지내고 있는 듯했다.
'인생의 한 부분을 상대에게 쏟는다.' 나는 술자리에 관해 이렇게 생각한다. 굳이, 서로의 시간을 내어 언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 예전에는 그것이 굉장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참으로 어렵고 많은 마음을 써야 하는 일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술 게임'을 외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술게임 비하 발언 아닙니다)았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내가 살아오며 생각했던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잘도 갔다. 친구들은 헛된 희망을 품고 있지 않았다. 되려, 희망을 내려놓고 앞을 보며 달릴 뿐이었다. 곁들이는 술은 우리를 조금 더 진지하게 만들기 충분했고, 지나간 일을 조금 더 선명히 떠오르게 했다.
처음 술을 마셨을 때가 생각났다. 공강의 어느 날, 낮이었다. 대학 동기들과 함께 근처 술집에서 간단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쿰쿰했던 소파 냄새가 퍼졌다. 정겨운 술집 사장님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모든 사람이 웃고 있었고, 거리엔 활기찬 기운이 가득했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다들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어깨를 들썩였다. 꽃이 예뻐 보이고, 하늘이 더 선명했다.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듯했고, 생동감이 느껴졌다. 나는 조금 전보다 더 솔직해진 상태로 무엇이든 말하곤 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들이 반짝였다. 이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매일 취한 상태의 느낌으로 살고 싶다는. 그러니까 조금 더 용감하고, 생기 있고, 선명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의 상기된 얼굴, 예전보다 조금은 더 무언가를 짊어진 얼굴을 보던 내가 말했다. '매일 적당히 취한 것처럼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 모든 것들이 조금 더해지거나, 덜하게 느껴질 텐데. 기분이 좋으면 좋은 그대로, 나쁘면 나쁜 그대로, 더 솔직해질 수도 있고. 용기가 더해지고, 상상력이 더해져서 더 팽팽 돌아가는 뜨거운 피를 느껴볼 수 있을 텐데.'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친구들은 각각의 생각에 빠져 유영하는 듯했다. 입가의 미소가 그득했다. 뜨겁게 살자, 취한 것처럼. 누군가 외쳤다. 그 말을 건배사 삼아 모두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