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보고'하는 습관 대체 왜 생긴 걸까

by 김단한

나에게는 조금 특이한 습관이 있다. 습관이라고 해야 할지, 버릇이라고 칭해야 할지 몰라서 우선 사전부터 찾아보았다. 습관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다. 버릇 역시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으로 나와있다. 두 가지 모두 어떤 행위를 '오래' 반복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저절로 몸에 익어버려 아주 자연스럽게 행해지게 되는 현상. 첫 문장을 다시 수정하자면, 나에게는 조금 특이한 습관이자 버릇이 있다, 정도가 되겠다.


나는 무엇이든 보고한다.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던지, 지금 무엇을 할 것이라던지, 어디를 갈 것이라던지, 지금 어디라던지, 뭐 이런 사소한 것들을 죄다 보고한다. 보고할 사람이 없으면 마음속으로라도 되뇐다. 어떤 불안증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강박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러한 '보고 증상'이 집에서도 발동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친구와 함께 카페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 친구에게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친구와 눈을 마주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받지 않으면 안 될 전화가 걸려온다. '미안, 나 전화 금방 받고 올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러한 것은 지극히 당연스러운 예의라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도 보고를 한다. 화장실 갈게, 나 지금부터 이어폰 꼽고 일 좀 할게, 게임 좀 한 시간 할게, 떡볶이 시켜 먹을게, 전화 좀 할게, 나 밥 좀 천천히 먹을게. 엄마는 이런 나에게 말하곤 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거냐고, 왜 하나하나 다 보고 하냐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대체 보고하는 버릇은 왜 생겼을까. 누군가 나에게 그러라고 종용한 것도 아닌데,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 버릇이자 습관을 지녀왔다. 하지 않으면 내가 답답하다. 그러면 일종의 강박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 않으면 불안한 감정이 밀려오는 것은 아니니 불안증과는 거리가 있을 터. 오늘, 또 한 번 '나 밥 좀 천천히 먹을게', '화장실 갈게', '게임 좀 할게' 보고를 하면서 나는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나의 행동에는 일종의 '방어'와 상대방의 '이해'를 바라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모든 말의 뒤에 '나 방해하지 말아 줘, 집중 좀 할게, 이해해줘' 이런 말이 붙어있는 것이고, 그 말은 생략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어폰 꼽고 한 시간만 있을게, 라는 말에는 한 시간 동안 나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과 고로 상대가 불러도 듣지 못할 것이니 이해해달라는 말이, 밥 좀 천천히 먹을게, 라는 말에는 밥 천천히 먹고 내가 알아서 치울 테니 답답하게 생각하지 말아 줘, 라는 말이 숨어있달까.


그러니 나의 '보고 증상'은 나를 방어하면서 동시에 이해를 바라는 일이자 말없이 행동하다 상대방의 동선과 부딪힐 수 있으니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며, 나의 시간을 제대로 확보하려 하는 행위이다. 이 모든 행위가 하나의 '보고'에 집약되어 있었다. 참으로 배려심 넘치는 습관이자 버릇이 아닐 수 없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 것이 아니니까, 어쨌든 할 것이니까 이건 '보고'가 아니라 '통보'가 아닐는지. 아무튼 이 희한한 습관이자 버릇을 나는 언제까지고 가지고 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것까지 말 안 해도 돼!' 친구와 가족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쟁쟁 울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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