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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Aug 11. 2022

끝이 다가올수록 오직 최악의 순간만을 생각한다

끝이 다가올수록 최악의 순간을 떠올리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충분히 잘 해냈고, 그에 관해 나 자신에게 칭찬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에 나는 항상 입을 꾹 다물곤 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 이것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결과가 나지 않고, 아직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는 이 마음이 더 극한에 닿곤 했다. 이때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순간' 시나리오는 이렇다. 나는 만년 2등이고, 절대 1등을 할 수 없다. 처음에야 2등도 좋았지만, 점점 가면 갈수록 떨어지게 되는 순위나 더 올라가지 못하고 2등에만 머무는 나 자신이 싫다. 이곳엔 그저 유리벽이 하나 있는 것 같다. 유리벽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그것을 깨부술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손자국이 날까 봐 조심조심 그곳을 피해 다닌다. 일에 대한 시나리오가 이렇다면, 사랑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많다.


사랑하는 나는 이 사랑이 끝날 것을 두려워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 것을 미리 두려워한다.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이 사람이 나에게 할 잘못된 행동과 내가 할 수도 있는 잘못된 행동을 번갈아가며 상상한다. 끝이 없는 것은 없다, 영원한 사랑은 없으니까, 사랑에 너무 과한 기대를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렇지만, 그게 될 리가.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묻는 박원의 노래처럼 어느 정도만큼만 사랑하고 더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가사를 나는 믿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이 가진 마음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물성이 없고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명치쯤에 있는 것 같은 이 마음이라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최악을 상상하고, 끝을 상상하는 버릇은 아주 어릴 적부터 있었던 듯하다. 그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정말 최악의 순간을 생각했는데, 실제로 상황이 최악에 닿지 않았을 때 나는 안도했고, 그리 힘들지 않았다. 되려 큰일 앞에서 침착함을 내보였달까.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니 또 다르다. 오히려 그때와는 다르게 더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끝이 올까 봐 두렵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날까 봐 무섭다. 갑작스럽게 끝이 다가올까 봐 무섭고, 내가 나를 칭찬해주어야 하는 좋은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이나 결국 어느 쪽으로도 안 좋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느라 그 순간을 놓치는 것이 싫다. 모두 하나밖에 없는 순간인데. 아낌없이 감정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에. 물론,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면서 어느 정도 제2의 플랜을 준비해놓는 것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묻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줄 안다.


아는데. 대체 이런 마음을 어떻게 정리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세요' 시리즈를 쓰며 제일 많이 반복하는 말은 '알지, 아는데, 잘 모르겠다'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은 줄도 알고,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줄 아는데, 이렇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주변에 좀 답답한 분들이 있어도 이해해주시길. 요즘은 '이해'라는 말이 또 너무 광범위하고 깊어서 쉽게 뱉어도 되나 싶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으니까, 어찌 되었건 나는 열심히 했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던 그것만 잊지 않고 또 열심히 해나가면, 또 좋은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그때만큼은 나에게 수고했다고 해주자. 나를 안아주자.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내가 좋아하는 매운 떡볶이를 먹자. 자축을 하자.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서 열심히 다시 쓰자, 그러면 또 쨍하고 해 뜰 날이 올 테니'는 매일 생각하는 말이다. 다 안다. 아니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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