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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Aug 12. 2022

노래를 잘 부르는 남자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노래를 잘 부르는 남자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좋아하는 노래를 잃게 될 확률이 높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마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좋아했다. 마이크를 쥔 사람이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나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여기에서 조금 더 파고들자면,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노래를 마치 자신의 노래처럼 잘 부르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노래를 오랫동안 들었던 티가 나는. 그러니까, 단지 이목을 끌기 위해서 무작정 비트가 빠르거나 시끄럽거나 욕이 잔뜩 섞인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면서, 반주가 멋들어지면서도 마치 책을 읽는 것 같은 풍부한 감정의 가사가 있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주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K는 어렸다. K는 나보다 두 살 어렸다. K는 꿈이 많았고, 그중에 가수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K는 목소리가 좋았다. K와 전화를 할 때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집중하지 않아도 저절로 귀가 기울어지는 목소리였다.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나 특별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유독 K를 잘 찾았다. K가 '누나'하고 부르는 그 낮고 작은 목소리는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그즈음의 나는 '조용하면서도 반주가 멋들어지면서도 마치 책을 읽는 것 같은 풍부한 감정의 가사가 있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K의 노래를 들을 기회를 자주 피했다.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의 K는 흠잡을 곳 없이 멋졌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으레 그렇듯, 나는 K의 다양한 면을 좋아했다. 한 마디로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었다. 내가 왜 굳이 '사랑의 포로'와 같은 말을 쓰냐면……, 난 정말로 K를 좋아한 그 순간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할 의지도 없는 '포로'와 마찬가지였고, K는 나를 이래저래 어떻게든 휘두를 수 있는 힘(내가 그 힘을 부여한 것이지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포로'와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사랑을 할 때마다 늘 '포로'였다. 포로의 신분에서 벗어나도, 스스로를 옭아매는 포로……. 


K가 노래까지 잘 불렀을 때 나는 정말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K는 노래방에서 딱 한 곡을 불렀다. 아니, 여러 곡을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딱 한 곡만 생각난다. 김윤아의 '봄이 오면'. 나는 그 노래를 K의 목소리로 처음 들었고, 김윤아의 노래를 남자가 이렇게나 멋지게 부를 수 있다니, 아니 저 중저음을 여기 이 노래에 사용하다니 정말 반칙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K의 이상형에 '어떤 노래든지 자신의 것으로 거뜬히 소화할 수 있는 여자'가 있었다면 나는 꽝이었을 것이다.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첫 소절을 부르는 K는 그야말로 내 눈엔 봄의 정령이자, 신이었다. 낮은 목소리는 노래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어쩜, 발칙해라. 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이 노래 실력을 꽁꽁 숨겼다니. K와 나는 아주 추운 겨울날 만났었는데, 이 노래방 안에는 벌써 봄이 온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싹이 움트는 것을 느꼈다. 나는 감히 그 싹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 싹은 움트지도 못하고 겨울 세찬 바람에 얼어 죽었다. 덕분에 나는 이제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건 말건 관심이 없다. 그냥 사람이 사람 구실을 좀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K는 노래를 잘 부르건 말건 상관없이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한 누군가에게로 봄날 벚꽃잎이 흩날리듯 날아갔다. 나에게 봄이 오면 노래를 불러주고 난 후 딱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봄이 오면 이라는 노래가 예고편이었나. 봄이 오면 떠나간다는 뜻이었나. 글쎄. 나는 가사처럼 아주 그냥 너와 함께 '바구니에 앵두와 풀꽃 가득 담아 봄 맞으러' 갈 예정이었는데. 원래 바람과 함께 날아간 이들은 이별 통보를 하지 않는다. 아주 오랫동안 잠겨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온갖 힘든 감정을 쏟아내며 자신이 그동안 너무나 힘들었다는 둥, 아팠다는 둥, 이야기를 꺼낸다. 사랑의 '포로'인 우리들은 또 그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잘 들어주지, 내 시간을 써가면서. 


차라리 이별 통보를 받았으면 더 좋았겠다 싶은 연애였다. 어쩌면 그는 나와 연애를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연애가 혼자서도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도 간혹 있다. 사랑한 것이 잘못인 것처럼 책임을 온전히 나에게로 돌리는 사람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관계에 대해 어느정도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이들. 어쨌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만나면 좋지 않다. 이별 통보를 확실히 하지 않는 사람도 위험하다. 나는 '봄이 오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화들짝 놀란다. 너무나 멋진 김윤아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게 만든 K가 밉다. 그러니까, '봄'이 오면 나는 자동적으로 K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좋아했던 그 노래를 마음 놓고 듣지 못한다. 나는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잃었다. 사랑 때문에. 이것이 사랑의 '포로' 아니면 뭐겠나, 가끔 생각한다. 그러니,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만나면 좋지 않다.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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