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착이 강하다. 특히나 '과거의 나'에게 하는 집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과거의 나'란 사람이 '현재의 나'에게 한 마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 그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제발 나 좀 그만 생각해!
나는 나를 자꾸만 생각하고 떠올린다. 그것은 불시에 찾아오는 어떤 벼락과도 같아서 순식간에 몸을 움츠리게 되고,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다시 한번 훑게 된다. 흔히 흑역사라고 말하는 어두운 과거가 나에게도 있는데, 요즘 그것이 자꾸 고개를 들이밀어 고민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나'란 사람도 '과거의 나'란 사람에게 할 말이 있다. 네가 자꾸 생각나게 만드니까 그렇지! 나도 그만 생각하고 싶다고!
'과거의 나'란 사람이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떤 것은 돌이킬 수 없이 나에게 낙인처럼 찍혀 탄 냄새를 풀풀 풍긴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현재의 나'보다 '과거의 나'는 더욱 배가 부르다. 그러니까, 내가 그때그때마다 저질러 온 흑역사와 같은 것들을 모두 품고 있어 무게가 엄청난 것이다.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란 사람이 나란히 시소에 올라타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과거의 나'는 편안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현재의 나'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아 허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타구니는 점점 조여 오고 앞으로 쏠릴 것만 같고, 그러다가는 '과거의 나'와 완전히 합체가 되어버릴 것 같아 억지로 버티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다.
요즘 자주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바라는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거리가 터무니없이 멀면 번아웃이 올 수도 있고, 그 시기에 슬럼프가 찾아와 모든 것을 멈추게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이 말을 듣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란 사람의 애증의 관계를 떠올렸다. '과거의 나'는 그대로 멈춰있고, '현재의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웃긴 것은, '과거의 나'란 사람이 '현재의 나'란 사람의 뒤에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의 술래처럼 눈을 가리고 '현재의 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의 눈치를 보며 앞으로 아주 조금씩 나아간다. '과거의 나'는 그대로 잠들어버렸거나, 나무에 붙어버려 뒤를 돌아볼 수 없는데도 '현재의 나'는 그렇게 '과거의 나'의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말하면 무언가 과거에 대단한 일을 벌였던 것 같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냥 남들이 들으면 아주 소소한 일이다. 아마 풀어놓는다면 뭐 그것 때문에 그러냐는 핀잔을 더 많이 들을지도 모른다. 같은 장면에서도 어떤 사람은 나의 씩씩함과 두려움에 맞섰던 나날들에서 굳셈을 잊지 않았던 나를 볼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두려운 나날의 파편에 맞아 매일매일 바스러지고 있는 나를 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뒤를 보느라 앞을 보지 못해 걸음이 느려지고, 장애물을 피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과거를 잠깐씩 돌아보며 회상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아예 뒤를 보며 걷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아주 식상한 이야기지만, 지금 이 순간도 조금 있으면 과거가 된다. 머무르는 것은 없다. 멈춰있는 것도 없다. 시간 속에 우리는 어떤 감정들을 잘 흘려보내며 삶을 지속해야 한다. 과거의 내가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새벽마다 몰려오는 과거의 어둠이 솜이불처럼 무거워져 나를 짓누를지라도. 뒤를 보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앞을 보며 씩씩하게 걸어야 할 것이다. 사실, 아는데 잘 안 된다. 아는데, 잘 안된다는 말을 요즘 자주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이다. 뭔가 해탈하고 깨달은 사람처럼 쓰고 있지만, 불쑥불쑥 얼굴을 내미는 '과거의 나'는 너무나 강력해서 내가 이길 자신이 없다. 그러니, 나는 나를 잘 달래보려고 한다.
적당한 위로를 받지 못하여 지금까지 나를 찾아오는 것이라면 적당한 위로를, 그때의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데 왜 너까지 알아주지 못하냐며 따지러 온 것이라면 적당한 사과를,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그저 외로워 찾아오는 것이라면 적당한 사랑을 주면서. 나보다 조금은 어릴 '과거의 나'를 달래는 방법을 택해보려 한다. 잘 되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