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哀悼)라는 말은 누군가를 떠나보냈을 때, 사용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외가를 모두 보내고 나서, 나는 한동안 애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조금 옅어질 때가 되었을 때, 나는 다른 것을 애도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나'에 관련된 것이었다.
남에게는 잘해주었지만, 정작 나에게는 인색했던 어느 날에 겪었던 다양한 감정들이 가만히 시간을 보낼 때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갑자기 튀어나와 선명히 상영되는 어떤 장면은 눈을 질끈 감아도 유독 선명해서, 억지로 턱을 붙잡혀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장면들이 떠오를 때마다 숨을 참곤 하는데, 대부분의 기억은 내가 숨을 참는 시간보다 더 길게 마련이라, 매번 숨을 훅 토하며 다시 처음부터 재생되는 그 기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자주 상영되는 장면은 정해져 있어서, 요즘엔 그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또?!'라는 심정을 가지고 경악하게 된다. 다만,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금 더 눈여겨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그것을 보기로 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어쩔 수 없어서도 아니고, 시간이 막연하게 지나길 바라서도 아니다. 그것을 자세히 보아야지만, 내가 나를 애도할 단어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애도하기로 했다. 아주 가끔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나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 쓰기, 홀로 생각하기… 어느 방법이 가장 명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들 고만고만한 가운데 어쨌든 세 가지의 공통점은 '피하지 않고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눈을 돌리고 싶거나, 질끈 감고 싶을 만큼 피하고 싶은 장면일지언정, 가만히 들여다보면 분명 그 기억이 옅어질 수 있는 하나의 열쇠가 보이게 마련이다.
나는 요즘 특별히 자주 상영되는 장면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대학교 때 일이다. 당시 전공이 연극영화였기 때문에, 나는 아주 다양한 수업에 참여하곤 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특히 재미있었다. 이론은 어려웠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아 신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론 수업 때 일이 생겼다. '오디션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한 특별한 자기소개 멘트'를 쓰는 것이 그 수업의 큰 주제였다. 모두가 고민하며 펜을 놀렸다. 그리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게. 명확하게 나를 어필하는 법, 나를 특별하게 소개하는 법.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기가 막힌 뭔가가 떠오르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배우기 위해 그곳에 앉아있었다는 것을 나는 몇 백번의 장면 상영 끝에 깨닫는다.
아무튼, 정해진 시간에 나는 나를 소개하는 간단한 5줄을 완성한다. 인사부터 시작해 담담하게 나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특별하진 않아도, 나는 그때 최선을 다해 글을 썼다. 순전히 내 관점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때, 교수님이 나의 소개와 다른 친구의 소개를 동시에 읽으셨다. 강당에 앉아있는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그리고, 읽은 이유를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나의 소개글은 망한 글, 그리고 친구의 소개글은 아주 특별한 글이라고 지칭했다. 나처럼 쓰면 안 된다고, 정확한 예가 여기 있었다면서, 다시 한번 목청 높여 나의 소개를 읽었다. 교수님의 입에서 발음되는 나의 이름과, 내가 쓴 문장이 산산조각이 나며 내 마음에 틀어박혔다. 강당은 고요했다. 나는 교수님께 내 글을 읽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교수님은 다시 한번 내 글을 읽으며, 여기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다들 분석해 보자는 말까지 보탰다.
그 이후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멍한 상태로 수업에 임해서였을까. 모두가 특별한데,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막막해졌다. 자기소개는 어렵다. 어려운 자기소개. 나는 나를 소개하는 것을 어색하게 여긴다. 그래서, 요즘도 나를 제대로 소개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겠다.
어딜 가나 나를 소개해야 하는 순간은 많다. 다만, 나는 그럴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 기억이 너무나 선명해 자꾸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만다. 나는 나를 애도한다. 그때의 나를. 무너지고, 깨지고, 상처받았을 나를 애도한다. 살면서 이와 비슷한 일들을 많이 겪었지만, 아직 말랑말랑했던 마음에 첫 상흔은 너무나 크게 남았다.
하지만, 그곳에 남아있지 않으려 나는 마음에만 숨겨두었던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도 말하고, 글로도 쓴다. 마음 어딘가에 쪼그리고 앉아 자기소개 5줄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그때의 나를 쓰다듬어주기 위해서. 나를 애도하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자기소개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나는 당시 엎어졌던 내가 지금의 나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등을 두드려줄 것이다. 요즘엔 뒤처진 '나'를 애도하는 시간을 자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