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해변에서 미끄러져 무릎으로 착지한 이야기
몇 년 만인지. 꽈당 넘어진 게. 친구와 오랜만에 제주도 여행을 간 첫날. 세화해변에서 인증샷 하나 남기고 싶어서 까만 현무암 위를 엉금엉금 걸어 파도가 닿는 곳 직전까지 갔다. 똑같아 보이지만 조금씩은 다른 사진을 50장 정도 찍었다. 그 자리에서 건질만한 사진에 하트를 눌렀다. 틈틈이 셀렉을 해줘야 여행이 끝난 뒤 사진정리하기 편해지니까 그리고 후회가 없으니까. 감사하게도 하트 누를 게 제법 됐다. 한 장소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이 몇 장 나온 건 성과가 좋은 날이다. 기분 좋게 왔던 길을 돌아가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파도가 지나간 바위는 미끄럽다는 상식은 증발했고 임무를 완수한 가벼운 마음만 있었다. 순식간에 시꺼먼 현무암이 내 코앞까지 와 있었다. 왼쪽무릎이 바위에 닿으면서 고여있던 바닷물이 청바지를 동그랗게 적셨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는 일이 서른 중반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너무 오랜만이라 당황스러움이 컸다. 통증이 스멀스멀 밀려왔지만 괜찮다는 말만 계속했다. 나의 넘어짐이 어떤 부정적 징조처럼 돼버릴까 봐 혹은 여행 첫날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게 될까 봐. 숙소로 돌아와 무릎을 확인해 보니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있었다. 제주도에서 약국에 갈 일이 생길 줄이야. 제주도 한 두 번 온 것도 아닌데. 아니 걷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서른다섯, 여전히 넘어질 수 있는 나이인가
나름 경험해 볼 만큼 경험해 봤다고 사람도 겪어볼 만큼 겪어봤다고 인생을 제법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게 서른다섯이었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척 보면 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쁜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넘어진다. 일을 할 때도 사회생활을 할 때도 공부를 하거나 시험에 도전할 때도 종종 넘어지곤 한다. 왜 오타를 찾아내지 못했을까, 왜 굳이 이런 말까지 했을까, 왜 꾸준히 못할까. 왜 해내지 못할까.
추위에 너무 약한 사람이라 겨울 내내 내복을 입고 살았다. 멍든 무릎이 내복에 가려져 샤워할 때 말고는 볼 일이 없었다. 안 보이니까 다친 걸 낫게 해야 하는 당연한 걸 잊었다. 빨리 낫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 건 의외의 이유 때문이었다. 살과의 전쟁 중이라 운동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아니 건강 때문이라고 하자) 운동할 때 무릎이 땅에 닿는 동작을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제주도에서 사 온 연고를 아침과 자기 전 넘칠 만큼 덕지덕지 발라주기 시작했다. 넘어지면서 얼룩진 청바지를 세탁해 얼룩을 지워내고 그걸 입고 출근한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멍도 부기도 잘 빼준다는 약사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다. 이틀만 잘 발라줘도 멍 크기도 부기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운동할 때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연고가 제법 많이 남았지만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됐다.
넘어지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 순간이 당황스럽고 부끄러울 뿐 설령 나의 넘어짐을 목격한 사람이 있어도 금방 잊어버린다.(친구는 여행 이후 내가 넘어졌던 얘길 한 번도 꺼낸 적 없었다) 이런 별거 아닌 넘어짐이 부끄럽다고 상처에 소홀해지면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상처도 자주 들여다보고 연고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발라야 한다. 몸이 나아야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것 처럼 다친 마음이나 의지도 회복시켜야 다시 달릴 수 있다.
서른다섯도 자주 넘어질 수 있다
두 발로 걷다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렇게 큰 일도 아닌 일.
살아있다면 겪을 수 있는 일.
계속 살아간다면 또다시 마주할 수 있는 일.
서른다섯은 여전히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넘어졌을 때 벌떡 일어나는 힘이 있고 다친 걸 낫게 하는 방법 정도는 조금은 아는 나이가 아닐까.